[대학원생 2600일 생존기] 5.힘든 적응 기간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는 '단형'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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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2600일 생존기] 1.용감한 시작

[대학원생 2600일 생존기] 2.컨택

[대학원생 2600일 생존기] 3.면담

[대학원생 2600일 생존기] 4.입학 시험



처음부터 꼬여버린 대학원 생활


1월 2일, 같은 날 같은 공간에 모인 동기들을 처음으로 만나고, 다 같이 교수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자리를 하나씩 배정받았습니다.


첫날 했던 건 실험실 탐방(저는 졸업 실험을 하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과 연구실 기존 구성원과 인사, 그리고 데스크톱 주문이었습니다.


저희 연구실은 각자 사용할 컴퓨터를 각자 구매한 뒤 졸업할 때에도 가지고 나가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생각지 않았던 목돈이 들어가긴 했죠. 


첫날, 새 식구들이 왔으니 다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리고기 집을 갔는데 제가 몸이 좀 안 좋았는지 아니면 긴장을 지나치게 했는지 그만 밥을 먹다가 배탈이 나 버렸어요.


학교에 못 나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심하게 탈이 나서 출근하자마자 며칠 동안은 죽만 먹어야 했던 정도였습니다. 그 기억 때문에 아직도 오리고기는 잘 먹지 않아요.


제 대학원 생활 초반이 꼬인 건 그때부터였습니다.




아픔뿐이었던 대학원 신입 시기


대학원 신입생이 되던 1~2월은 제겐 사실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첫날부터 배탈이 나고, 잘 모르는 사람들과 갑자기 하루 종일 함께 있으려니 적응도 안 되고요.


누군가의 눈치를 안 보면서 학교를 다니던 학부 때와 달리 갑자기 눈치 봐야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요.


다른 환경에 적응하느라 겪는 몸살, 오리고기 먹고 난 배탈에 다리까지 다쳐서 삼중고를 겪었습니다.


가뜩이나 몸이 안 좋았던 저는 통학 시간 때문에 학교에 늦게까지 머무를 순 없었는데(저희 연구실은 자율 출퇴근이었습니다), 다른 신입생들은 다 학교와 멀지 않은 거리에 살고 있어서 제가 퇴근한 후에도 계속 일을 배우다 늦게 퇴근하더라고요.


동기들이 내가 모르는 것을 척척 알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벌써부터 내가 한참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제게는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처음 입성하는 대학원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불안함, 긴장감 같은 것들을 항상 칭칭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앉아있을 때, 어둠이 내린 퇴근길 버스 안에서 혼자 가만히 앉아있으면 그저 눈물이 주룩주룩 나더라고요.


그렇게 대학원 극 초반에는 혼자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제가 어떻게 그 스트레스를 이겨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사실 이겨냈는지 혹은 대학원 생활 내내 함께여서 인지하지 못했는지조차도 잘 분간이 안 되네요.


시간이 지나면서 눈물은 쏙 들어갔던 게 어쩌면 적응의 문제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대학원 생활 중에 힘이 든다면,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서 벗어나야 할지 모르겠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배, 동기, 교수님, 다른 연구실 친구, 가족, 혹은 전문가, 그 누구든지요.


전 신입생 시기에 혼자 헤매던 과정이 썩 즐겁지 않았거든요. 




내게 주어진 첫 미션


그러던 1월 어느 날, 교수님이 신입생들을 모아두고 미션을 하나 주셨습니다.


“우리 랩 연구의 기본이 되는 아이템인 A를 만들고 그로부터 데이터까지 얻어보아라. 모든 실험 과정은 선배들에게 물어봐가면서 배우고 직접 해 보아라.”


이 랩에서 연구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실험들을 빨리 배워서 적응하라는 교수님의 의도였죠.


처음에는 막연하게 잘 배우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그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작 과정도 복잡했고, 손도 많이 갔고, 그리고 제가 생각보다 훨씬 많이 곰손이더라고요…


샘플을 떨구거나 흘리기도 많이 해서, 어떻게 충격을 가하면 샘플이 깨지는지 혹은 안전한지에 대한 노하우는 그때 많이 쌓게 된 것 같아요.


제게 실험을 가르쳐 줄 선배들은 모두 친절했습니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면 항상 차근차근 대답해 주고, 실험을 배운 다음 제가 직접 해보는 것까지 다 봐주시면서 정성스럽게 가르쳐 주셨어요.


덕분에 실험 자체는 꽤 빠르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미션 클리어까지 갈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배우는 건 똑같이 배우는데 실험에서 금손 동기와 곰손 저의 차이는 점점 벌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왜 동기는 되는데 난 안되지? 난 뭐가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항상 저를 짓눌렀는데 답을 찾을 수는 없었어요.


실험을 이렇게 못하는데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교수님과 선배들이 나를 영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많이 하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됐었죠.


전 이제 막 모든 것을 배워 나가던 1개월 차 신입생이었으니까요.


실험이 완전히 숙달되어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1년~1년 반 정도가 걸렸습니다. 오래 걸렸다면 오래 걸렸죠.


때로는 사람 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실험을 익힐 때도 그랬지만, 숙달하고 나서도 보니 제 동기는 그보다 두세 단계 더 어려운 실험을 맡아 척척 해내고 있더라고요.


그런 상황을 겪으면서, 이미 실험을 월등히 잘하는 누군가 있다면 나는 그 외의 다른 부분에서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꽤 일찍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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