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년차의 관문] QE - 박사자격시험

[저년차의 관문] QE - 박사자격시험

카페인으로 돌아가는 코딩머신 입니다. 



나: "와... 나, 이대로 가다간 3년차까지 아무것도 한 거 없을 것 같아 ㅋㅋㅋ"


동기: "무슨 소리야? 우리 이미 3년차야"


나: "응? 우리가 19년도 봄 학기 입학 아닌가? 지금 21년이고 아직 2년차..."


동기: "아니ㅋㅋ 그러니까 지금 3년차인거지. 그럼 너 첫 학기 때는 0년차라고 하냐?"




벌써 3년차


저는 포항공과대학교 19년 봄학기 입학한 자연과학 계열 석·박통합과정 학생입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3년차가 되고 말았습니다.


연구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 3년차 선배라고 하면 엄청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제가 벌써 그 3년차네요.


근데 아직 뭔가 이룬 건 없는 것 없고, 졸업은 너무나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저년차 때 뭘 한 걸까요? 분명 바쁘게 지냈던 거는 같은데...


저년차에는 크게 네 가지 관문이 있습니다.


QE(박사 자격시험), 지도교수 배정, 조교 그리고 전문연구요원입니다.


사람에 따라 저 관문을 자동문 수준으로 가볍게 통과하기도, 거의 절벽 수준의 장애물로 느끼기도 합니다.


저는 후자에 더 가까웠던 것 같네요.


오늘은 첫번째 관문인 QE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QE란?


QE, 퀄, 박사 자격시험 혹은 논문 자격시험이라고도 불립니다.


QE는 기본적으로 '이 학생이 논문을 쓸 정도의 역량이 되는지 검증하기 위한 시험'입니다.


시험을 치러 합격·불합격이 결정되는 형태이지만, 코스웍 과목으로 면제되기도 하고 시험이 아니라 발표로 이루어지는 등 학교, 과에 따라 기준이 다릅니다.


난이도도 천차만별인데 포항공대 수학과의 경우, QE 합격자가 단 한 명도 없던 해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속했던 과의 경우 대다수가 과목면제로 QE를 통과하고, 과목면제에 실패하더라도 두 번의 시험 응시 기회가 있습니다.


즉 늦든 빠르든 결국에는 다 통과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관건은 얼마나 빨리 통과하냐였습니다.


빠르면 첫 학기 필과과목으로 통과할 수도 있습니다.


통과하면 빨리 연구에 전념할 수 있으니까 졸업에 도움이 됩니다.


또 당시 학과 정책은 QE 통과를 기준으로 조교수당이 상승하기 때문에 신입생들은 가능한 한 첫 학기에 통과하려고 했습니다.




나의 QE 도전기


저에게는 첫 학기에 통과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저는 타대생 신분이었고 아직 연구실 컨택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연구실 배정은 첫 학기 성적이 반영되기 때문에, 타대생인 제가 우수성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반드시 첫 학기에 QE를 통과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차고 넘치는 동기, 신입생의 충만한 의욕, 그리고 첫 학기 조교에 걸리지 않는 운까지 따라 줬습니다.


학부 때 6과목 공부했던 거랑 비교하면 3과목쯤이야 쉬운거 아닌가? 라는 제 생각은 첫째 주 수업을 듣고 산산이 부서지게 됩니다.


수업이 너무 어려워서 거의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수업은 오늘 자습할 범위를 확인하는 정도였고, 오전에 수업이 끝나면 교과서와 수업자료를 찬찬히 읽으면서 '그때 말씀하신 게 이런 내용이구나….' 하며 이해했습니다.


가끔 너무 막히는 부분은 학부 전공책을 뒤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말 내내 과제도 하고 퀴즈도 준비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월요일이었습니다.


중간고사를 보고 성적이 나왔습니다.


어째 죽어라 공부한 것 치고는 신통치 않습니다.


망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기말고사 때 한 번만 미끄러지면 바로 탈락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제 주변 동기들은 연구도 하고 조교도 하고 과외도 하면서 저보다 성적을 잘 받더군요.


대학원 입학 때 면접 교수님께서 "학부 성적 보니 죽어라 해야겠네" 라고 말씀하셨던 게 떠오르더군요.


순탄치는 않았지만 기말고사 때까지 열심히 버텨 무난하게 QE를 통과했습니다.


추후 집계해보니 대충 10명 중 7명 정도가 통과했던 것 같습니다.




QE 합격 이후


QE를 통과했을 때는 뭔가 대단하게 이룬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저와 같이 통과한 사람들은 그저 고민 하나를 덜어냈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늦든 빠르든 결국에는 다들 QE를 통과했습니다.


조교수당도 결국 교수님 재량이어서 빨리 통과했다고 먼저 인상되는 일은 없었습니다.


제 경우 지도교수 배정에 QE가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됐겠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했단 사실을 후회하는 건 아닙니다.


그 당시 열심히 한 덕에, 지금 더 단단한 토대 위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연구하면서 세세한 기초까지 다시 볼 여유는 좀처럼 없거든요.


그 외에 전문연구요원, 조교 배정 등에서 성적을 잘 받아둔 게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무엇보다 값진 건, 처음 대학원에 와서 QE 통과라는 깃발 아래 고군분투했던 동기들과의 전우애와 추억이 아닐까 합니다.




QE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입학 예정자들을 위해 조언을 해 준다면 QE 요건을 잘 파악한 후 전략적으로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저희 과는 QE 면제 조건으로 세 과목 중 적어도 한 과목이 A-이상이 필요했는데, 상대적으로 쉬운 과목에 배팅하면 더 쉽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개중엔 배팅 실수로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간혹 "나는 딱 합격선만 넘을 정도로 가성비 있게 공부해야지" 라는 작전을 세우는 친구들이 있는데 한 끗 차이로 탈락하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어차피 연구에 필요한 내용이고 할 때 확실히 배우자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QE에 떨어지시더라도 '다음에 다시 보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쿨하게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길게 봤을 때 빨리 붙든 늦게 붙든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모든 저작권은 해당 콘텐츠 제공자 또는 해당 콘텐츠 제공자와 김박사넷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콘텐츠의 편집 및 전송권은 김박사넷이 가지고 있습니다.

읽을거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