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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실패한 석사입니다.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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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서울 중위권 대학 졸업 후, SKP 중 하나에서 자연계열 관련 석사 막학기(사실상 취준)를 보내고 있습니다.
항상 의연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어떤 밤에는 제가 보낸 1년 반 간의 대학원 생활에 대한 현타가 저를 짓누르고, 오늘이 딱 그런 날입니다.

이 글은 일종의 반성문이자, 그냥 현재 감정을 기록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성격의 글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실패한 석사입니다.
하나의 논문도 없습니다.
논문만 없는게 아니라, 대학원 진학 후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본 것이 없습니다.
미미한 novelty라도 가지는 주제를 발굴해보지도 못했고, 그런 미미한 문제라도 풀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코스웍에 충실하지도 못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 할 때는, 받은 연구라면 죄다 하고 싶었고('받은' 이라는 표현부터 글렀습니다), 취업여부와 상관없이 대학원때는 최대한 연구만 하다가 졸업하고 싶었습니다.

연구실을 배정받지 않은 1학기 째엔, 필수 코스웍을 들으면서, 각 연구실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리뷰논문을 읽으며 학계에 크게 어떤 분야가 있는지 파악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1학기를 마치고 배정된 연구실은, 제가 예상했던 연구실이 아니었습니다. (제 책임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인간적으론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연구를 하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논문은 2년 전이었고, 사실 그 마저도 본인의 연구분야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연구실엔 단 한명의 선배도 없었고, 어떤걸 연구하는 연구실인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Alumni의 선배 한분께 연락을 드려서 찾아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지도를 하지 않으신다고 하시더군요.
다만 졸업에 대한 기준은 매우 낮으시다고 하셨습니다. (석사논문 2주컷..)

하지만 그래도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아있으니 혼자 힘으로 뭐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학기 째에는 우선 대주제부터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코스웍에 충실하고자 하며(지금 돌아보면 충실한게 아니었습니다. 그 때의 과제물을 보면 생각을 열심히 하지 않은 티가 나더라고요)
'OO학과' 여러분야의 리뷰논문을 읽으며 어떠한 분야가 있는지 읽어봤습니다.
근데 그게 끝이었습니다.
일종의 지식만 늘어났을 뿐, 여러분야 중 깊게 판것이 없고, 어느정도 들어가다가 혼자서는 못할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하나 둘 씩 연구를 해나가는 동기들을 볼 때, 마음이 급해지고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학기 째에는, 흥미가 생기는 어떠한 방법론(method)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느끼기에는 활용할 가치가 있는 방법론이라고 생각했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한 학기 동안 그 keyword가 나오는 논문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여전히 겉핥기였던건 안비밀)
그리고 또 마지막 학기가 되어 하나의 주제도 잡지 못한 채 다시 포기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왜 어느 하나 범위를 좁혀서 접근하지 않았는지
왜 마음이 급해 논문을 겉핥기 식으로만 읽었는지
왜 다른 연구자들의 세미나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았는지
적극적으로 다른 연구자에게 연락을 해서 조언을 구할걸
왜 그렇게 수동적으로 살았는지
왜 어느 내용에 있어 끝까지 생각하지 못했는지
못할 거 같으면 취준이라도 열심히 할걸
AI툴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걸
연구가 안될 것 같으면 코스웍 이론 공부라도 제대로 할 걸
안될 거 같아도 더 해볼걸
조금 더 승리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생활에 임할걸
뭐라도 들고가서 교수님을 귀찮게 할걸(요즘 느끼는 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듯 합니다. 제 오만한 생각입니다.)

등등..

제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이 떠오르네요
근데 그걸 알면서도 저는 지금 제자립니다.
학부 2-3학년 수준의 논문으로 겨우겨우 졸업은 하겠지만,
스스로 석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느낍니다.

요즘엔 사실상 제 분야와 상관이 없는 금융공기업으로 취업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달 간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다가, 엇그제 전공내용을 다시 볼 이유가 있어서 봤습니다.
제가 왜 본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왔는지 다시 느낄 수 있을 만큼 재밌었습니다.

솔직히 여기 계신 교수님들이나 박사님들은 고작 1년 반 남짓한 기간가지고 제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는 것을, 제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논문을 쓰는 사람이 너무 멋있고,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근데 저는 스스로 연구를 계속하기엔 너무 부족한 사람 같습니다.
저는 부족한 사람이라서 절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연구를 하기 위해서 가르쳐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 능력이 없다는 반증인 것 같기도 합니다.
박사를 어디 다른 곳에서 한다고 해도, 제 무엇을 보고 받아줄까 의문도 생깁니다.

연구가 마무리 된 동기들은 요즘 유학준비를 하면서, 석사 2년을 본인의 커리어를 위한 스텝업 삼아 올라갑니다.
근데 전 2년동안 정체만 되어있던 것 같아 마음이 무겁네요

글만 보면 많이 비관적이긴 한데, 대학원 생활과 별개로 제 인생에 있어선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상 푸념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쓴소리든 조언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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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2025.11.13

첫학기에는 왜 연구실 배정이 안되었는지 의문이긴하지만 석사로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신것 같은데요ㅜㅜ? 지도, 조언해주는 선배, 교수님이 안계신 상황에서 일반적인 석사(아웃라이어 제외)가 뭘 할수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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