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동물 연구소"라 불리던 이곳은 이제 "동물농장"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은 늙은 멧돼지 메이저 교수의 꿈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연설에서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동물들의 해방"을 외쳤고, 이는 곧 연구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혁명 후, 돼지들은 지도부를 자처했다. 그들 중 가장 영리했던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메이저의 가르침을 '과학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리했다. 벽에는 일곱 가지 계명이 붙었다.
두 발로 다니는 것은 적이다. 네 발로 다니는 것은 동지다. 어떤 동물도 실험복을 입지 않는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해치지 않는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어떤 동물도 논문을 독점하지 않는다. 어떤 동물도 연구비를 횡령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계명들은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했다. 돼지가 지배하는 연구실, 모든 동물은 평등하지만 어떤 이는 더 평등했다. 날마다 울려 퍼지는 구호, "네 발 좋아, 두 발 나빠!" 이 구호는 마치 주문처럼 모든 동물들의 뇌리에 새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는 변질되어갔다. 젊은 돼지들은 끝없는 실험과 데이터 분석에 시달렸다. 그들의 눈은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충혈되었고, 등은 밤샘 작업으로 굽어갔다. 반면 늙은 돼지들, 특히 수석 연구원과 교수들은 안락한 사무실에서 지배와 감시에 몰두했다. 그들은 젊은 돼지들의 노고를 '경험'이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했다.
스퀼러, 돼지들의 대변인은 끊임없이 선전을 펼쳤다. "동료 여러분, 우리의 연구 성과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돼지의 지도력 덕분입니다!" 그의 웅변은 다른 동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효과적이었다.
대학원생 닭들의 삶은 더욱 비참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실험 샘플을 생산해내는 기계 취급을 받았다. 알을 낳듯 데이터를 만들어내고, 병아리를 기르듯 연구 결과를 키워내지만, 그들의 노력은 결국 돼지들의 논문이라는 식탁에 올라 사라질 뿐이었다. 가끔 뛰어난 성과를 내는 닭이 있으면, 돼지들은 그를 '특별한 닭'이라 치켜세우며 다른 닭들과 이간질을 조장했다. 개와 고양이는 돼지의 충실한 간신이 되어, 반역의 기미를 사전에 차단하는 감시자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연구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동물들을 색출했다. 특히 고양이들은 그들 특유의 교활함으로 다른 동물들 사이에 스파이를 심어 정보를 수집했다. 개들은 힘으로 다른 동물들을 위협하며 돼지들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다.
말들, 특히 복서와 클로버는 연구실의 큰 일꾼이었다. 그들은 "나는 더 열심히 일하겠다"와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끊임없이 일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言)은 들리지 않았다. 학계의 바람을 전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음에도, 돼지들은 말의 이야기를 억눌렀다. "너의 일은 일하는 것이지, 말하는 게 아니야"라며 말들을 단순한 노동력으로만 취급했다. 말들은 계속해서 힘든 실험을 수행하고, 장비를 옮기고, 밤늦게까지 연구실을 지켰다. 하지만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바깥 세상의 새로운 연구 동향, 윤리적 문제에 대한 우려, 더 나은 연구 방법에 대한 제안은 모두 무시되었다. 결국 말들은 점점 침묵하게 되었고, 그들의 침묵은 돼지들의 독재를 더욱 공고히 했다. 어느 날, 복서가 과로로 쓰러졌다. 돼지들은 그를 병원에 보내준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논문 제본 공장으로 팔아넘겼다. 클로버는 이를 의심했지만,글을 읽을 줄 몰라 확인할 수 없었다.
양들은 연구실의 다수를 차지하는 평범한 구성원들이었다. 그들은 돼지들의 모든 명령에 맹목적으로 따랐고, "네 발 좋아, 두 발 나빠!"를 가장 열성적으로 외쳤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그들의 구호가 바뀌기 시작했다. "네 발 좋아, 두 발 더 좋아!"로 말이다. 벤자민이라는 늙은 당나귀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고, 모든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는 "인생은 어차피 불행한 법"이라며 침묵을 지켰다. 그의 냉소는 연구실의 현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토끼들은 연구실의 하급 연구원으로, 끊임없는 반복 실험에 시달렸다. 그들의 빠른 번식력은 연구 성과의 양적 증가로 이어졌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늘 부족함을 지적받았다. 토끼들은 언제나 '더 많은, 더 빠른' 결과를 요구받았고, 이는 그들을 점점 지치게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돼지들의 변화는 더욱 뚜렷해졌다. 그들은 점점 더 인간 연구자들을 닮아갔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들이었다. 돼지들은 실험복을 입기 시작했고, 인간처럼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실험의 효율을 위해서"라는 핑계였다. 나폴레옹은 이제 '교수님'이라 불리길 원했다. 그는 넥타이를 매고 학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다른 돼지들도 그를 따라 하나둘 인간의 복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두 발로 서서 걸어다녔고, 인간의 언어로 논문을 쓰고 발표했다. 연구실 한켠에 '교수 전용 휴게실'이 생겼다. 돼지들은 그곳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인간 연구자들과 어울렸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연구실 전체에 울려 퍼질 때마다, 다른 동물들은 공포에 떨었다.
어느 날, 돼지들은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우리는 이제 인간 대학원생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의 논리는 단순했다. "우리의 연구 수준이 인간을 뛰어넘었으니, 이제 그들을 가르칠 때가 왔다." 동물들은 혼란스러웠다. 한때 그들의 적이었던 인간들이 이제는 동료가 된다니. 하지만 아무도 감히 반대하지 못했다. 벤자민만이 중얼거렸다. "돼지나 인간이나, 결국 다를 게 뭐가 있나."
마지막 날, 다른 동물들은 연구실 창문 너머로 돼지들과 인간들의 회의를 지켜보았다. 그들은 서로의 연구 성과를 자랑하며 건배했다. 동물들은 돼지와 인간을 구별할 수 없었다. 그들의 얼굴이, 그들의 욕심이, 그들의 모든 것이 똑같아 보였다. 그리고 연구실 벽에는 새로운 표어가 걸렸다.
"모든 연구자는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연구자는 다른 연구자보다 더 평등하다."
우리는 과연 어떤 동물인가? 돼지인가, 닭인가, 아니면 양인가? 혹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가? 진정한 지식의 탐구와 학문의 발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2024.07.01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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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