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석사, 미국에서 박사를 했는데 나올때까진 오직 포닥으로 네이쳐에 논문내서 교수가 돼야지 하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당. 그게 아닌 모든 길은 도태되는것 같았고 실패로 낙인찍히고 대우도 거지같아 보였거든요. 옥스브릿지까지 가서 포닥하다가 5급공무원 돼서 연구를 미련없이 버리고 공무원 생활하는 랩 선배가 가장 잘나간다고 추켜세워질때 쎄함이 느껴졌습니다. 분야가 분야라 더 그랬겠지만 (생물학입니다) 7급 9급 공무원을 한다, 취업은 자리도없다 우리분야는 뽑지도 않는다 초치며 학부연구생 4학년짜리의 꿈과 희망을 서둘러 즈려밟은 그당시의 하늘같던, 지금보면 그냥 가소로운 포닥 박사님도 기억이 나네요.
미련없이 세부전공을 바꿔 유학준비해서 박사를 나왔는데 친구들 선배들이 인더스트리 경력을 너무 잘쳐주고, 똑똑한 선배들이 취직을 하는게 예사에, 가서 지내는 생활이나 실제로 신약개발에 기여하는 모습도 다 너무 멋있어보이더라구요. 한해 두해 스며들다가 저도 그렇게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디펜스를 하고 논문을 리비젼 낼때까지만 있어달라는 교수님의 부탁(?)에 포닥으로 써달라고 부탁(?)해서 한두달 있는다는게 거의 1년에 가깝게 있었네요. 그동안 경기가 안좋아지고 행정부가 바뀌어 NIH와 학계와 포닥들에 피바람이 몰아쳤어요. 구직은 최악의 바이오파마 불경기에 인터뷰만 보지 실패하고있고 교수님은 펀딩이 없어서 세달 시간 줄테니 나가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때쯤 영주권 신분생각해서 하버드 MIT 스탠포드같은 포닥도 알아봤는데 제가 지원을 시작하니 NIH 펀딩컷이 뉴스에 뜨더라구요. 아찔했네요. 취직하라던 여친은 제가 포닥한다고 할때쯤 결혼이야기도 엇나가서 이별을 통보했고, 교수님은 나가라하고, 취직은 실패하고있고, 포닥지원은 면접만 몇번볼뿐 갑자기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게 되어버렸는데, 뉴스에서는 학생비자 홀더들도 비자박탈당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아마 이때가 인생에서 최악의 저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다행히 저점이었어요. 눈을 조금만 낮춰서 연봉 10만불 정도되는 (박사초봉은 12만불 정도 평균임) 회사로 지원을 했고 감사하게도 절 뽑아주어 포닥 계약이 만료되자마자 취직했어요. 여자친구는 헤어졌지만, 신분이 당분간 보장되고, 인더스트리 경력도 쌓이고, 제일 힘들다는 업계 첫발 진입을 성공했으니 가장 힘들던 구간은 벗어난것 같아요.
첫출근을 했는데 박사하던동안 석사만했던 친구들이 '너 회사가면 ㅈ된다, 박사가 훨쉽다 포닥이 더쉽다, 교수해라 그게쉽다' 오지랖부리고 엄살떨지말라했던 친구들 말이 계속 떠오르네요. 이 일을 하고 돈을 두세배를 받는다고? 싶기만 하고, 훨씬 더 많이 겪어봐야겠지만 분위기나 의료보험 (포닥때는 연봉에 비례해서 학교지원분이 주어져서 마지막에 하프타임할땐 월 700불냈는데 여긴 월 100불내네요) 이나 은퇴자금 401k, 실험하고 배우는것들, 조직에서 실제로 유의미한 환자들의 삶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 등등에 벅찹니다.
퇴근을 했더니 해가 쨍쨍하고 연구, 논문 걱정을 안한다는게 너무 새로워 인생이 새로 시작된거 같아요. 하루가 이렇게 길수 있다니, 왜 박사하다가 취직한 친구들, 여친, 선배들이 운동하고 언어배우고 놀러다니고 즐길거리를 찾았었는지 이해가됩니다. 그동안 뭘위해 그렇게까지 논문에 집착했는지 생각도 들고, 그덕분에 보상을 받는건지 싶기도하고, 앞으로 내 인생은 재밌어질수 있을까 고민, 걱정, 기대도 들고 하네요.
취업후기 게시판에 썼는데 리젠이 너무 없어 게시판 옮겨 써봅니다. 선배님들의 조언 격려 응원 감사히 받겠습니다. 혹시 취직을 생각하시는 학위과정생 후배님이 읽으신다면 꼭 힘을 받아서 끝까지 좋은연구로 마무리하시길 바랄게요.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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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1
202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