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가을학기 UT Austin 합격] 김박사넷 유학교육 후기 - 1편에서 이어집니다.
Q: 사후 판단을 하면, ○○님이랑 ◆◆◆ 선생님이랑 합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물론 이거는 합격을 하셨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지만...(웃음) 처음부터 잘 맞는 건 아니었어요.
A: 네 그랬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편집자 주 - 개인적인 사유입니다)가 있었는데, 그걸 듣고는 ◆◆◆ 선생님 잘 만났다고 생각했었죠.
Q: 사실 수업에 대해서 항의도 하셨었거든요.
A: 제가 지금 기억이 왜곡됐을 수도 있는데 기억나는 걸로 그냥 말씀을 드리면은… (웃음) 약간 제가 생각하기에… 그러니까 저만의 글쓰기 스타일이라는 게 좀 있어요. 사실은 제가 자존심도 세고 고집불통 스타일이어가지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글쓰기의 포인트들이 있었거든요.
그때 뭘 생각했는지는 딱 집어서 기억은 안 나지만 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분명히 내가 더 잘 쓴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을 고쳐야 된다고 하니까 그런 게 납득이 안 됐다고 해야 되나? 내가 왜 틀린 거야 뭐 이런 기분이 들었나 봐요, 그때.
Q: 당연히 그럴 수 있죠. 그럼 그런 피드백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A: 일단은 항의 직후의 상황부터 보면은 그 때 임형광 선생님이랑 미팅을 했었거든요. 그때 해준 말씀으로 설득이 다 됐습니다.
Q: 저는 알지만… 독자들을 위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려주시겠어요?
A: 요약하자면 임형광 선생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님의 기분보다 ○○님의 합격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저는 그걸로 완전히 설득이 됐습니다.
Q: 맞아요, 합격이 제일 중요하죠. (웃음) 그리고 논리를 세우는 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안 맞을 수 있죠. 오히려 그게 자연스럽고요.
A: 네 그러고나서 ◆◆◆ 선생님도 좀 다른 방향으로 피드백을 해 주셨어요. 제가 잘했다 제 논리가 맞다 이런 말을 들었다는 게 아니라 여기서의 포인트는 왜 그런지 설명도 더 해 주시고 디테일한 질문도 중간에 해가면서 제가 원하는 부분에 대한 얘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네 저희도 선생님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드미션이 끝나고 ○○님께도 물어보려고 했었고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러면 레벨업반을 들은 소감을 들어볼까요?
A: 돈값 했죠. 돈값이라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계약서 상에 나와있는 부분을 훠얼씬 초과하는 나중에까지 봐주셔가지고 진짜 드릴 말씀이 없기는 하네요.
Q: 그래요? ◆◆◆ 선생님이 그때 개인적으로 숙제도 많이 내줬다고 하던데, 우리 단톡방에는 안 울라와서 저는 몰랐거든요.
A: 숙제 개인적으로 많이 내주셨죠. 책도 무슨 책을 몇 장 읽어봐라, 글 쓸 때 이런 점을 부각을 시켜야 설득을 할 수 있다 이런 거 말씀해 주시려고 책도 읽어보라고 하시고 이것저것 있었죠.
진짜 도움이 컸어요. 그게 진짜 ◆◆◆ 선생님한테…. 진짜 감사한 거는 제가 정말 끝까지 도움이 좀 필요했어요, 사실은. 정말로 뭔가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좀 그렇지만 제가 좀 어리기도 하고 또 준비하는 사이에도 자꾸 생각이 좀 정리가 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좀… 하반기에도 개인적으로 피드백을 받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제 생각에 상반기에는 그 글이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기도 해가지고 그래서 피드백이 필요했는데 어떻게 정말… 진짜 운 좋게 받을 수가 있어가지고 너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게 진짜로 유학준비를 하면서 너무 진짜 의미 있게 쓴 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저는.
Q: 그랬구나. 사실 학생들이 처음 시작을 할 때 비전이나 미션 같은 것들을 어렴풋하게나마 가지고 있거든요. ○○님은 어땠던 것 같아요?
A: 레벨업반을 안 했더라면, 비전과 미션이 뭔지 이해를 못했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해요. 밋업만 들었을 때는 내가 가지고 있었던 비전, 미션의 정의가 잘못되었구나를 느꼈다면, 레벨업반에 가서야 이를 이해한 것 같습니다.
Q: 그냥 지원은 했겠지만 이런 스토리 라인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될까요?
A: 비전과 미션에 얼라인된 글을 못 썼을 거다. 왜냐하면 비전과 미션이 뭔지 이해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요. 김박사넷 밋업만 들은 친구들이 있잖아요. 그 친구들의 글을 한번 볼 기회가 있었거든요.
Q: 같은 학교 학생 중에요? 스터디 같은 걸 했었어요?
A: 경로는 기억이 안 나요. 그냥 밋업 들은 친구들 중에서 한 네 명 정도 모여가지고 기회가 있었는데, 그래서 알게 된 거는 내가 밋업만 들어서는 비전 미션을 이해를 못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 글들을 읽으면서 이 친구들이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저한테 묻지도 않았는데 약간 거만한 마음으로 그냥 이거 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이런 느낌이 들었어요.
Q: 그게 몇 월 쯤이었어요?
A: 10월쯤이었어요. 근데 사실 지금 SOP는 그때 이미 완성이 돼 있지 않았어요.
Q: 그럼 저한테 보내준 UT Austin SOP 프로토타입은 언제쯤 나왔어요?
A: 프로토타입은 10월쯤 나왔던 것 같기는 해요. 근데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그 이후에 바꾼 거랑 퀄리티 차이가 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마지막 제출전에는 Ver 21 수정본이었거든요. 10월달에는 Ver 10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Q: 보통은 나아진다고 봐야겠죠? 생각과 문장을 가다듬고 논리적인 미싱 링크도 보완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레벨업반은 도움이 됐다. 그러면 제가 진행했던 클래스는 어땠어요?
A: 11월, 12월 있었던 클래스 맞죠? 일단 11월은 저한테는 도움이 안 됐어요. 이유는 제가 이미 그전에 3월에 테스트해보기도 했고 또 원서 접수할 때 딱 SOP랑 PS만 입력하면 되는 상태로 만들어야 된다는 각오가 있어서 원서사이트 열리자마자 다 준비해 놨었거든요. 다 업로드하고 다 메일 보내고 토플 점수까지 확인받은 상태에서 보니까 아는 내용이었죠.
그 다음 12월달 클래스는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는데 진짜 끝나고 감사 메일 보내라는 건 진짜 너무… 그거는 생각을 못했던 부분이에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새벽시간에 꾸역꾸역 들으러 들어갔는데 보람이 있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너무 당연하게 보내야 되는데 생각을 못했을 것 같아요. 그때 미국 시간으로 새벽에 클래스 참여를 했는데 정말 잘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때 클래스 듣고 노션에 정리한 거 보면서 PPT에서 고쳐야 될 점 한번 쭉 리스트업해서 업데이트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는 감사메일 보냈던 곳은 다 합격했네요 (웃음)
Q: 도움이 됐다니까 다행입니다. 그러고보니 ○○님이 Direct PhD 가려고 마음을 먹었던 계기를 얘기하다가 말았네요. 왜 유학인가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약간 우리가 옆길로 샜어요. (웃음)
A: 대학원은 왜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왜냐하면 중간에 창업을 해봤기 때문에 조금 필요성을 느낀 것 같긴 하거든요. 제가 왜 박사인가는 질문에 항상 좀 농담으로 얘기하는 거는 진짜 약간 묘비 같은 데 보면은 닥터라고 적히잖아요. 그거 좀 짱인데 이런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했고요. (웃음)
Q: 비행기 탈 때도 박사 학위 있다고 체크하면 비행기에서도 닥터 킴, 닥터 리 이렇게 불러주잖아요.
A: 네 그리고 사람들이 내 말을 좀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박사학위가 있으면 그 자체로도 좀 들을 것 같기도 하고요.
Q: 저는 그것도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웃음)
A: 진짜요, 거의 고등학생 때 생각하는 수준이라 생각했거든요. (웃음) 그렇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 제가 엄청 컨택을 해가지고 대학 연구실에 가가지고 연구 참여를 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Q: 그러면 대학을 미국으로 갈 생각은 없었어요. 외국어고 같은 경우에는 유학반도 있거든요.
A: 저는 아마 일반고여서 그런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 선례가 있거나 시스템이 갖춰져 있거나 이런 게 전혀 아니었고 99%는 국내 대학을 가는 그런 상황이었어서 진짜 맨땅의 헤딩이었어요.
Q: 그럼 어떤 연구에 참여를 한 거예요?
A: 그때 제가 연구했던 거는 지금 전공하고 완전 다른, 공기 질 관련된 연구였거든요.
Q: Air quality요? 어디서 했어요?
A: 고1, 고2 때 했는데 가천대랑 한양대 연구실에서 실험을 했습니다. 그때 사실 되게 좋은 평가를 받아가지고 고등학교 때 막 해외 학회 보내주고 그랬거든요.
Q: 사실 CV에 학회가 없어서 특이 케이스라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 때 이미 다녀오셨군요?
A: 네 유학준비하면서 굳이 얘기한 적은 없으니까… (웃음) 그 경험이 결국 비전이랑 얼라인이 안 되니까 버린 것도 있고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황송한 추앙을 받고 있을 때 연구를 나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솔직히. 진짜 박사가 되더라도 비로소 그것밖에 모르는구나, 그것만 아는구나 그런 생각 때문에 한 번 그 사이클을 온전히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요약을 하자면 연구를 제대로 한 사이클을 진득하게 해보고 싶다 그런 거죠.
Q: 이미 고등학교 때 그런 생각을 했군요.
A: 그래서 석사는 항상 많이 아쉽다고 생각을 했어요. 석사는 학위 외에 다른 목적이 있지 않으면 좀 많이 아쉽다고 생각을 했고 실제로 현실적으로도 박사는 돈을 받는데 석사는 돈을 많이 내야 되잖아요. 가능은 할지 모르겠는데 부모님한테 요청하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잖아요? 몇 억씩 드는 건데…
그리고 제가 창업하면서 느꼈던 게 박사학위 파워가 좀 있더라고요. 나중에 창업을 해도 박사면 기술적인 부분은 안 물어보더라고요. 투자받을 때도 그 위력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그런 것들이 왜 박사인가에 대한 답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왜 미국이냐는 얘기도 궁금하신가요?
Q: 그럼요, 국내 대학원 갈 수도 있는데 안 간 이유. 보통 논문 실적이 없으면 국내 대학원 가서 논문을 쓰려고 하거든요. ○○님은 그렇게 안 했잖아요.
A: 네 저는 약간 미국병이 좀 있었어요. 미국병. (웃음)
Q: 아티스트들 많이 걸리는 병? 그걸 연구자 버전으로 걸렸다고 생각하면 돼요? (웃음)
A: 연구자 버전 및 약간 진짜 광기? (웃음) 진짜… 그러고 막 미국 역사에 대해서 굉장한 호감을 갖게 됐거든요. 그러니까 미국의 독립 선언문부터 시작한 헌법의 역사. 그런 미국 사회에 관해서 굉장히 관심이 들더라고요.
Q: 민주주의의 역사잖아요.
A: 네 그러니까 현대 민주주의의 시초라는 점에서 너무 설레는 거예요. 그런 정신에서 건립된 나라라는 게 너무 호감이 들었고 그것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훨씬 질문을 환영하는 그런 환경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사람은 조금 둔감할 수도 있는데 저는 그런게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거든요. 질문이 엄청 많은 스타일이어가지고 그거를 꼭 다 물어볼 수 있는 환경에 가고 싶었는데 저는 그런 곳을 아직 찾지를 못했어요. 질문을 했는데 뭔가 좀… 이게 왠지 모르겠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기분, 조금 껄끄러운 기분 이런 게 좀 있었던 것 같아서요.
Q: 미국에 살아본 적이 있어요?
A: 네 초등학교 때 1년 반 살아봤습니다. 한국 나이 기준으로 10살 2학기부터 초등학교 4학년까지.
그런 질문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군요. 제 경험을 비춰봤을 때 비슷한 느낌이 있어서 ○○님이 그렇게 생각한 근거가 있었을 것 같았어요.
네 정말… 그게 저한테는 참 큰 가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자유롭게 토론하고 질문하는 것 뿐만 아니라 토론하는 게 너무너무너무 재밌거든요. 그래서 학회 가도 Meet the speaker* 같은 거를 악착같이 신청해가지고 미국인 교수님 얘기하고 궁금했던 거 물어보고 그런 거를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어서요. *편집자 주 - Meet the Speaker Session, 학회에서 연사와 만나는 세션입니다. 식사와 함께 또는 별도로 마련되는 연사와의 만남 시간을 의미합니다.
Q: 영어로 자기 표현하는 것은 자유롭겠네요.
A: 네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고 생각은 하는데 영어로 인터뷰할 때는 좀 편했던 것 같아요.
Q: 그럼 한국 대학원은 고려대상이 아니었어요?
A: 고려 대상이긴 했죠. 다 떨어지면 좀 고려 대상이긴 했는데… (웃음) 고민이긴 했어요. 근데 이때는 약간 떨어지고 나서 생각하자싶어서 많이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Q: 왜냐면 ○○님의 타임라인을 보면 분명히 그것도 생각을 했을 거란 말이에요.
A: 당연히 했죠.
Q: 아까 독일 연구소 인턴 지원을 7월 초에 시작해서 10월에 어플라이를 했다고 했단 말이에요, 이때 한참 레벨업반에서 유학준비를 할 때인데 지금 해외 인턴 지원도 한다? 보통 학생들은 이런 생각을 안 해요. 웬만한 자기 확신이 없으면 실행에 옮기지 않거든요.
A: 사실 그걸 옵션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해외 연구소 인턴을 신청하는 목적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유럽에서 살아보고 유럽에 대한 로망을 키우거나 없애자 그거였고요. 주말에 유럽 놀러 다니고 싶어서, 교환 학생도 못 가봤으니까 그런 것도 있고. 마지막으로는 미국 대학원 다 떨어져도 커리어상에서 묻히게 하려고 한 것도 있었어요. (웃음)
Q: 그랬구나. (웃음)
A: 약간 그런 것도 있었어요.
Q: 약간 버퍼 기간을 두고 그때 빨리 생각을 해서 뭔가를 하자.
A: 네
Q: 그래서 미국 대학원으로 바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A: 질문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토론을 많이 하는 분위기 때문에요. 그래서 그런 환경에서 제가 핏하게 연구하는 미래를 머릿속으로 많이 그렸던 것 같아요. 사실 졸업하고 여건이 된다면 미국에서 커리어를 계속해나가고 싶은데 늦게 시작할수록 나이도 들고, 여러가지 이유로 점점 힘들어지더라구요. 최대한 덜 힘들고 싶어서 미국 대학원으로 커리어를 시작해보고 싶었습니다.
Q: 만약에 지원한 데서 다 불합격했다면 뭘 할려고 했어요?
Q: 사실 그 생각을 하려고 여기(독일)에 온 건데. 아마도 올해 하반기 입학하는 한국 대학원에 지원을 했을 것 같아요. 아마 그러고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막 찔러보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박사넷에서 컨택을 하는 건 배워가지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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