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이과계열이 아닌 문과쪽 전공자라 어쩌면 여기 계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는 글이 아닐지 모르겠고 김박사넷 글을 열심히 읽는 유저도 아니지만 지도 교수의 방임이나 방목 때문에 괴로운 분들이 있으시면 한마디라도 보탬 되기를 바라며 잠깐 써봅니다. 저는 유럽에서 박사를 했고, 날아가보니 지도교수가 이미 다른 대학 교수직에 지원한 사실을 감춘 채 저를 본인 수업 땜빵시키려 뽑은 상태였고, 드라마 소재 될만한 여러 스토리를 겪은 뒤에 지도교수님 교체하고 새 지도교수님 역시 저의 논문 주제에 전문성 1도 없으셔서 박사 끝날 때까지 혼자서 철저히 멘땅에 헤딩했던 연구자입니다. 펀딩도 나중에 없었고요. 하지만 저희 전공 분야의 거물급인 논문 심사위원 분이 꼭 논문을 본인이 편집장인 학술 서적 시리즈에 단행본으로 내라고 해주실만큼 나름의 결과를 거두었는데 그것은 학교 안에서 받는 지도가 말 그대로 0 이어서 너무나 막막했을 때 제 주제로 논문을 낸 외부 학자들에게(국내외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적극적으로 메일로 들이대어 답해주시는 분들께 줌 미팅으로 질문도 하고,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서 연결고리를 만들고 그 중에 한두 분이라도 친절한 분이 계시면 염치 불구하고 소통을 이어나가며 학문적 조언을 구하는 끈을 이어나가는 노력을 했던 것이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꼭 물리적으로 떨어진 학자분들 뿐만 아니라, 주변에 주제와 관련된 연구를 한 포닥이 있으면 그 포닥에게도 엄청 자주 찾아가고 귀찮게 했습니다(미안하니 선물 공세도 하고). 실험 위주로 하는 이과 쪽에는 적용되지 않을 얘기겠지만.. 아뭏든 그렇게 큰 방향을 잡고 챗지피티를 통해 자잘한 질문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해외 학회에 나가서 만난 유사 주제를 연구하는 다른 국가의 박사생과도 네트워킹을 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저 혼자 미친듯이 수많은 논문을 보며 공부하고 감을 잡아나가는 노력도 기본적으로 하고, 지도교수님이 답이 없을 때 막막했던 시간들이 되려 저의 사고력이나 연구 관련 능력을 올리는 역설적인 시간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가르쳐주는 이가 없어 불안했기에 더 많은 책이나 논문을 보고 했던 것들이 나중에 돌아보니 장기적으로는 연구 실력을 끌어올리는 나름의 자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이외에 혼자 장기 레이스를 지치지 않게 해줄 수 있는 어떤 틀, 같이 논문 쓰는 톡방이나 소모임을 찾아서 논문 진도를 뺀다거나, 또 운 좋게도 빨리 끝내라고 채찍질해주시는 외부 멘토도 몇 분 계셔서 그런 것들로 동력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푸시해주시는 분이 한분이라도 있을때 그게 엄청난 힘이 되고, 이런 면에 있어서는 제가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유럽에 나갔을 때 toxic한 권위자들을 제외하면 한국보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의 인간적 정이 너무나 살아있고, 미국보다도 훨씬 순수하고 끈끈한 부분에 대해 감동을 여러 번 받았고, 이런 김박사넷이나 관련 사이트를 가끔씩 보면 한국 사회의 잘못된 교육 제도나 가치관들로 인해 생산된 문화가 솔직히 너무 안타까워서, 외국 사람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똑똑한 이들이 많은 한국분들이 서로 좀 더 따뜻하게 도와주는 문화를 함께 가꿔나가면 좋겠습니다. 말 한마디라도 서로 따뜻하게 하고, 서열놀이나 권위주의나 냉소, 비아냥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모여 있는 분들인데, 서로 좀 더 겸허하게 상부상조하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눈에 보이지 않게 상호 유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쯤에서 그만하고 훈계처럼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지도의 부재로 힘든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 되는 분이 계시면 좋겠네요. 모두 화이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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