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제자들에게 “웬만하면 대학원에 진학하지 말고 학부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하라”고 말한다. 공부할 자료는 어디에나 널려있는데다 (내 전공인) 전자공학 쪽 학계는 국내 산업이 압도하고 있는 만큼 현장에서 ‘살아있는’ 공부를 하는 편이 어느 모로 보나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몇 년간 파악한 다음, 정말 중요한 문제를 정해 차분하게 풀어볼 요량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확고한 목적의식 없이 대학원에 진학하면 허송세월하기 십상이다. 더욱이 취업 시장은 해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실제로 학부만 졸업하면 거뜬히 취업할 수 있었던 회사였는데 석사 과정까지 마친 후 지원하면 그 사이 기업 눈높이가 엄청나게 올라가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대학원, 학부 때와 다른 학교 선택해보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대학원 생활을 알차게 보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 석사 학위로 2년 경력까지 인정받은 후 취업하면 2년 전 대졸 공채로 입사했던 동기들과 다시 경쟁해야 하는데, ‘굴러온 돌’이 ‘박힌 돌’보다 잘하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 상황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상위권 대학 몇 곳을 제외하면 요즘 대학원은 대부분 정원 미달이다. 지원만 하면 합격할 수 있으니 굳이 학부와 동일한 학교 대학원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분위기를 바꿔 심기일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단 점을 감안하면 대학원은 오히려 학부와 다른 학교를 선택하는 걸 적극 권장하고 싶다. ‘대학원생이 무척 귀한’ 시장 상황을 십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대학원은 학부와 달라서 학교 ‘이름값(name value)’만으로 판단, 선택하면 곤란하다. 학교 간 편차보다 한 학교 내 교수 간 편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특히 본인 학부와 다른 학교 대학원에 진학할 땐 정보 부족으로 모두가 꺼리는 교수(대학원생들은 이런 교수를 가리켜 ‘괴수’라고 부른다)에게 배정될 위험도 있다.
만약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두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해당 교수 실험실(lab) 학생 중 그 대학 학부 출신 비중이 얼마나 되는가? 둘째, (석사학위를 받은 후)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비율은 어떤가? 이 단계에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었다면 이번엔 관심 가는 교수와 면담을 진행한 후 반드시 그 교수가 관장하는 랩 소속 대학원생들을 따로 만나 대화해볼 것. 관심 가는 랩이 서너 개 수준으로 추려졌다면 본인 학부의 해당 분야 연구 교수를 통해 그곳의 평판을 확인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박사 생각 있더라도 일단은 2년 계획으로
좋은 교수를 만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건 대학원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희망 경력(career)을 쌓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따져보는 작업이다. 일단 들어가려는 랩 졸업생의 사회 진출 현황을 조사해보자. 그게 자신의 졸업 후 희망 진로와 비슷하면 최선이다.
설사 박사과정까지 마칠 생각이 있다 해도 일단은 대학원 생활을 2년 정도로 계획하고 시작해보길 바란다. 물론 교수 입장에선 ‘박사 할 학생’을 선호하는 만큼 “박사과정 수료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속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게 합격에 유리하다.
교수가 처음부터 석사·박사 통합 과정을 등록하게끔 유도하는 경우도 생각해봄 직하다. 제도상으론 중도에 얼마든지 석사과정으로 변경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 자칫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럴 땐 “박사까지 할 생각이 있지만 석사 논문을 작성하는 걸로 매듭 하나를 완성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주변에 얘기하면 좋은 핑계가 된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는 사람에게 교수가 더 권하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석사 학위 논문을 한 편 써보는 경험은 아주 유익할 수 있다. 군데군데 이가 빠진 데이터를 앞에 놓고 논문을 쓰려 하면 그제야 자신의 실험 계획이 얼마나 엉성했는지 절감하게 된다. 심사위원들 눈에 그게 안 보일 리 없다. 그럴 땐 논문 심사, 일명 ‘디펜스(defense)’ 단계에서 한 번 시원하게 깨지고 정신 차리자. 그런 다음, 박사과정 1년차 때 실험을 전부 새로 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논문을 쓰면 된다.
대학원생 체험, 기업 인턴 등 적극 활용을
대학원생 구하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요즘 대학은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부생을 유치하기 위해 학부생연구(UR)[1] 사업이나 대학원 인턴십 제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다. 일부 연구중심대학은 방학 중 다른 대학 학부생을 초청, 몇 주 과정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학원 진학에 진정 관심 있다면 이런 기회를 적극 활용하기 바란다.
평소 관심 있던 기업에서 인턴 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꼭 체험해보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고작 이런 일 하려고 대학에 다녔나’ 싶을 수도, ‘음, 이 정도 일이라면 해볼 만하네’ 싶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원래 회사 일은 재미가 없다. 그러니까 월급 주는 거다. 재밌으면 자기 돈 내고 다녀야지, 에버랜드나 롯데월드 갈 때처럼.)
학부생일 때에도, 심지어 대학원에서 인턴으로 있을 때에도 몰랐는데 정식 대학원생이 되고 보니 지도교수가 ‘괴수’로 돌변할 수도 있다. 그럴 땐 괜히 ‘쫄지’ 말고 과감히 그곳을 뛰쳐나오길. 교수의 영향력이 두렵다고? 걱정할 것 없다. 대학원생에게 ‘갑(甲)질’ 하는 걸로 존재감을 찾는 교수라면 십중팔구 학계에서도 왕따일 테니까. 그런 교수가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채용 과정에서 손톱만큼의 영향력이라도 행사할 리는 더더욱 만무하다.
2018.05.03
2018.05.04
2018.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