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정신과(精神科, Psychiatry)’라는 명칭이 해당 의학 분과의 실제 연구 대상과 방법론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형이상학적 오해와 사회적 낙인을 강화한다고 생각한다.
정신과는 흔히 ‘마음의 병을 다루는 학문’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뇌의 구조·기능·신경회로의 이상을 탐구하고 치료하는 의학 분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 분과만이 ‘정신’이라는 용어로 분리되어 불리는 이유는 과학적 필연성보다는 역사적·사회적 관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나는 정신과가 실질적으로는 ‘뇌과’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 명칭 또한 재고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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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Ⅱ. 자료의 성격과 학문의 성격은 구분되어야 한다
정신과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다음과 같은 전제에서 출발한다.
> “정신과는 주관적 경험과 사적인 의미를 다루므로, > 다른 의학 분과와 달리 객관적·물리적 학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입력 자료(input)**와 **설명 결과(output)**를 혼동한 것이다.
정신과 진료에서 사용되는 자료는 분명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띤다.
* 환자의 감정 보고 * 생각, 신념, 인식 경험 * 고통에 대한 주관적 서술
그러나 이 자료들은 **치료의 목적이나 결과가 아니라, 추론을 위한 관측값**에 불과하다. 정신과가 최종적으로 제시하는 설명과 개입은 항상 다음과 같은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 진단 범주 * 신경회로 기능 이상 * 신경전달물질 조절 * 약물 반응성 * 예후 예측
즉, **자료는 주관적일 수 있으나, 설명은 객관적이고 물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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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Ⅲ. 다른 의학 분과와의 비교
이 점에서 정신과는 결코 예외적인 분과가 아니다.
예컨대,
* 내과에서는 “어지러운가?”, “속이 쓰린가?”와 같은 주관적 증상 보고를 듣는다. * 신경과에서는 “찌릿한 통증이 있는가?”, “감각이 둔해졌는가?”를 묻는다. * 이비인후과에서도 “이명이 들리는가?”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자료로 삼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분과들을 ‘정신내과’, ‘정신신경과’, ‘정신이비인후과’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의학 분과는 자료의 성격이 아니라, 설명과 치료의 수준에 따라 구분되기 때문이다.**
정신과 역시 이와 동일하게 주관적 보고를 통해 **뇌 상태를 추론하는 자연과학적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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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Ⅳ. ‘정신과’라는 명칭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
그렇다면 왜 유독 이 분과만 ‘정신’이라는 명칭을 유지하게 되었는가?
이는 과학적 이유라기보다 다음과 같은 역사적·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되었다.
### 1. 병리의 가시성 문제
과거에는 정신질환의 병변이 육안이나 간단한 검사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 결과, 기능 장애가 ‘마음의 문제’로 환원되어 인식되었다.
### 2. 법적·사회적 완충 장치
정신질환을 명확한 뇌 질환으로 규정할 경우, 형사 책임, 도덕적 책임, 사회 규범에 대한 판단이 복잡해진다. ‘정신’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문제를 유보하는 완충 장치로 기능해왔다.
### 3. 심신이원론의 잔재
몸은 의학의 대상, 마음은 철학·종교의 대상이라는 전통적 이원론이 정신과 명칭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현대 신경과학의 발전과 더 이상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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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Ⅴ. 현대 정신의학의 실제 모습
현대 정신의학은 이미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 정신질환의 신경회로 모델화 * 유전적 취약성 연구 * 신경전달물질 및 네트워크 이상 규명 * RDoC 체계와 같은 생물학 중심 연구 프레임
이는 정신과가 실질적으로 **뇌과학의 한 분과**로 작동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다시 말해,
> 정신과는 이미 ‘뇌과’이지만, > 이름만 과거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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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Ⅵ. 결론
정신과는 사적인 의미를 치료하는 학문이 아니다. 사적인 경험을 **자료로 삼아**,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뇌 상태를 이해하고 개입하는 의학 분과**다.
따라서 ‘정신과’라는 명칭은 그 학문적 실체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며,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와 낙인을 재생산한다.
이제는 정신과를 ‘마음의 문제’가 아닌 **뇌의 기능 장애를 다루는 의학**, 즉 ‘뇌과’로 재정의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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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Ⅶ. 맺음말
의학은 더 이상 형이상학적 언어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정확한 명명은 정확한 이해를 낳고, 정확한 이해는 환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를 변화시킨다.
202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