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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던 문돌이가 긁혀서 씁니다. 법은 수학이나 과학이 아닙니다.

20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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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석박사분들 계시는 곳에 하찮은 문돌이가 기웃거려서 죄송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크롬에 자동추천으로 뜨길래 가끔씩 눈팅하고 있습니다.
AI 판사 도입에 대한 글이 인기글에 있어서 읽어보았습니다. '판사들이 지 꼴리는대로 판결한다', '판사들이 얼마나 한심한 판결을 하면 이런 여론이 나오냐' 는 식의 댓글이 베스트 댓글이더군요. 솔직히 긁혔습니다.
네이버 기사나 인스타 등에서 이런 댓글 볼 때는 그냥 무시합니다. 그들은 일반인이니까요.
그런데 각 분야의 학자이거나 전문가이신 분들까지 이런 반응이신 걸 보고 솔직히 좀 실망했습니다.
타 전문분야에 대한 존중이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네요. 많은 분들과 염원(?)과는 다르게 왜 판사가 AI로 대체되기 어려운지,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시는 법에 대한 오해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1. 판사가 AI로 대체되기 어려운 이유 (본론은 2번이니 스킵하셔도 됩니다)

가.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AI의 판사의 핵심은 기존 판례나 법률에 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새로운 사실관계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AI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법률 관련 AI는 다 이런 식입니다.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한 판례가 있다면 AI판사는 사실관계가 동일한 새로운 사건에 대해(사실관계가 동일하다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지만) 이전 판례대로 판결을 할 것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AI가 사람에 비해 월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법원의 판결에는 기존 시대를 답습하고 재확인하는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사실관계이더라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존의 판례를 폐기하고 새로운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예시로, 과거에는 국민 대다수가 종중(동일 선조의 후손으로 구성된 종족단체) 구성원은 성년 남성에 한정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고, 법원도 그에 따른 판결을 하였습니다. 80, 90년대에는 집안의 큰 일은 남자가 결정한다는 인식이 너무나도 당연했으니까요.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대법원은 기존이 확립된 판례를 깨고 당연히 여성도 종중 구성원에 포함된다는 판시를 하였습니다. 성 평등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다르기 때문에 과거 판례는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기존 데이터를 따르는 AI가 어느날 갑자기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과거에 없던 새로운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나. 때로는 '지 꼴리는 대로 하는 판결'이 더 나을수도 있습니다.
판사들 마다 비슷한 사건에 대해서 판단이 다르니 판사를 믿을 수 없다. 따라서 AI로 대체 해야한다는 식의 주장이 있습니
다. 인간 판사가 동일 사건에 대해 다르게 판단한다고 그게 오류는 아닙니다. 오히려 소수 견해와 다수 견해가 대립함에 따라 담론의 장이 열리고 이 과정에서 더 나은 법리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AI가 정답 하나만 딱 내놓으면 법학은 거기서 발전 멈출 위험이 있습니다. 다양성이 말살된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과학 하시는 분들이 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 재판은 팩트찾기 게임이 아닙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우리나라 재판이 원님 재판인줄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실체적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당사자도 아닌 판사가, 당사자 간에 있었던 분쟁에 대해 객관적이고 온전한 진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오만입니다. (실체적 진실은 오직 당사자와 신만이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변론주의 원칙에 의해서 당사자가 주장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법원은 판단하지 않고, 처분권주의 원칙에 의해 당사자가 구하는 것 이상의 판결을 할 수 없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대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법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을 하고 증거자료를 잘 수집해서 이를 주장하면 승소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이 법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주장을 하거나 증거를 잘 제출하지 못하면 패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좋은 변호사 선임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한 사람은 승소하고,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억울한 면이 있더라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AI판사가 도입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법원에 제출된 증거에 의해서만 판단할 수밖에 없기에 인간 판사에 비해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실무에서는 판사들이 한쪽 당사자가 법을 잘 모르는 약자인 경우 적극적 석명("이거 주장해보세요")을 통해 변론주의의 한계를 다소 일탈하면서도 힌트를 주고 편들어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해진 규칙대로만 하는 AI판사가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라. AI 판사의 판결이 잘못되었는지는 누가 판단하나요?
인간 판사는 언제든지 오류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1심,2심,3심(+파기환송심), 심지어 재심까지 두고 있고 민사 고액 사건이나 형사 강력 사건의 경우 1심부터 3명의 판사가 협의하여 판결하고 있습니다. 3심에서는 무려 12명이 협의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인간보다 뛰어난 AI 판사의 판결이 틀렸는지 아닌지는 어떻게 판단하나요? 더 뛰어나고 더 많은 메모리를 사용하는 AI판사에게 맡길건가요? 더 뛰어난 AI 판사의 판결도 우리 상식에 반하면 어떡하죠? AI판사로 대체하자는 주장의 가장 큰 논거는 인간 판사의 판결이 국민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AI 판사를 도입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결코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바. '기존 판례를 따르지 않고 AI가 헌법을 해석해서 판결하면 된다' 는 주장에 대해
"기존 판례 없이 AI가 헌법 해석하면 된다"는댓글이 베스트 댓글이었습니다. 헌법은 매우 추상적인 일반조항이라 헌법학자들끼리도 해석에 대한 학설이 엄청나게 갈립니다. 그 어떤 뛰어난 AI라도 헌법만 가지고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판단할 수 없습니다. 헌법 자체에 위헌성 있는 조문도 있습니다. 헌법 제29조 제2항에 의하면 군인의 목숨은 공짜이므로 보상이 필요없습니다. (어느 학자든 위헌이라고 주장하나, 헌법을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할 수 있는가? 라는 딜레마로 인해 아직도 개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설령 AI에게 헌법을 해석하여 구체적 사건에 적용한다 한들 헌법 자체의 위헌성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마. 법은 국회의원이 만듭니다.
많은 분들의 AI에 대한 기대는 법대로 공명정대하게 어떠한 사견도 없이 판결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일부분 인정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법 만드는 국회의원들 진짜 믿으시나요? 민식이법 같은 떼법은 말할 것도 없고, 법 만들 때 오타 검수도 제대로 안 하는 경우 허다합니다. 다른 법과의 관계도 생각안하고 그떄그때 졸속으로 만드는 법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인간 판사는 때로는 국회의원들이 대충 만들어놓은 법을 어떻게든 선해해서 합헌적인 판결을 하곤 합니다.
AI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사. AI 판사 도입은 효율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입니다.
법은 수학이나 과학처럼 절대적인 진리나 정답이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사실판단은 부차적인 부분일 뿐 법은 본질적으로 가치판단의 영역입니다. 판사는 증거를 통해 인정된 사실관계를 토대로 '그 증거에 의해 추단되는 사실관계에 따른다면' 그 행위는 선한가 악한가,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의인가 불의인가 판단합니다. 이걸 AI한테 맡긴다는 건 인간이 스스로 선악의 판단을 AI에게 맡김으르써 그들의 지배를 받겠다고 선언하는 꼴입니다. 법원의 권력은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막강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삼성전자와 같은 대규모상장회사에 대한 설립무효의 소 등에 국가의 중대사에 대한 재판을 AI가 담당한다고 하면 받아들일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입니다. 재판은 AI가 더 잘 할지라도, AI 판사를 도입하느냐 마느냐는 '누가 우리를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의 바람과 다르게 판사는 가장 마지막에 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2. 법에 대한 오해와 해명, 그리고 전문분야에 대한 존중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입니다.

가. 최소한의 절차라도 알고 비난했으면 좋겠습니다.
베스트 댓글에 100억짜리 범죄는 봐주면서 1000원짜리 절도는 강력사건으로 취급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1000원짜리 절도라고 하니 최근에 있었던 '초코파이 절도 사건'이 떠오릅니다. 여기서 판사가 뭘 잘못한건지 저는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당초에 검사는 너무나도 경미한 사건이니 벌금 5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한 것이고, 기소유예로 끝내고 싶어도 피의자에게 자동차 절도와 음주운전의 전과가 있었으므로 50만원 구약식 정도가 검사의 최대한의 재량일 것입니다. 그런데 피고인이 도저히 50만원의 벌금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여 정식재판을 청구하여 검사나 재판부의 의사와 무관하게 재판이 열린 것입니다. 이에 1심 법원은 벌금 5만원을 선고하였습니다. (피해가 경미하다고 해서 무죄를 선고하면 1000원짜리는 훔쳐도 된다는 뜻이 되므로 그럴 순 없었던 것), 그런데 피고인이 벌금 5만원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고 피해자측도 끝까지 가보자고 하여 결국 2심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판사가 뭘 더 해줘야했을까요?
절차를 아는 사람은 절대로 욕할 수가 없는 판결입니다.

나. 여러분들은 논문 쓰실 때 국민 취향에 맞게 쓰시나요?
국민 법감정에 맞지 않는 판결이 많다고 욕하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국민 법감정이라는 것에 실체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지만, 판결이 꼭 국민 법감정에 맞아야 하나요? 판사들은 여러분 만큼이나 고도로 훈련받은 전문가들입니다. 전문가들의 판단이, 법을 하나도 모르는 일반 국민의 입맛에 무조건 맞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들이 밤새워 쓴 연구 논문이나 연구 방향성이 일반 국민들 취향에 안 맞는다, 내 기분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욕먹고 수정해야 한다면 받아들이시겠습니까? 과학적 진실이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듯이 법적 정의로 다수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미천한 문과인 제가 과학이나 연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연구하고 논문 쓰고 그거 AI가 훨씬 잘할텐데 랩실 다 없애버리고 그냥 AI로 대체하자'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다. 죄송하지만, 법은 여러분들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저 같은 미천한 문돌이들은 감히 여러분들의 연구에 토달지 않습니다. 왜냐면 못 알아들으니까요. 여러분들이 쓰시는 수식, 원소 기호, 전문 용어 등은 제가 모릅니다. 그래서 아 그냥 내가 모르는 전문분야인가보다 하고 아무런 훈수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법은 여러분들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의 분야가 관련 지식이 풍부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듯이, 법학도 그렇습니다. 단지 법학은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문자로 되어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으니 내가 그 의미를 이해했다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법률 용어는 비록 일상적인 용어와 동일한 용어일지라도 그 뜻이 완전히 다릅니다. 꼭 원소기호로 쓰여 있어야만 전문 용어인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내가 이해한 바와 다른 판결이 나왔다라고 하여 그 판사를 비난하는 것은, 타 전문분야에 대한 지적 겸손이 부족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3. 여러분들은 지식인들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AI가 절대로 판사라 대체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 견해에 따르면 대체할 가능성이 낮다라는 것이고,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법학을 잘 모르시듯 저도 AI를 잘 모릅니다.
다만, 그 누구보다도 논리와 근거를 중시하시는 석박사, 지성인 분들이 별다른 고민 없이 '판사 지 꼴리는대로 하느니 AI가 낫다', 'AI로 싹 다 갈아치워라'같은 주장을 하시는게 너무 아쉬워서 그럽니다.
그런 말은 감정에 휩쓸리는 일반인들이나 하는 말이지, 지식인인 여러분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 커뮤를 접해봤지만 여기만큼 지적이고 능력이 좋으신 분들이 많이 계신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문돌이인 주제에 이공계 석박들은 어떤 생각을 하나 하고 종종 눈팅해온 것입니다.
그만큼 여러분들에 대한 존경심과 존중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 긁히게 된 것입니다.
판사와 다른 법조인들도 여러분들 만큼이나 학문에 열의가 있고 고도로 훈련받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전문가들입니다.
저는 법을 알지만 다른 전문분야는 잘 모르기에 타 전문분야의 전문가분들은 리스펙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전문가라면 다른 분야에 대해 존중, 적어도 최소한의 지적 겸손은 갖추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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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2026.02.09

인간지능에 필적하는 AGI가 나온다면 대체되긴 하겠네요
현재수준의 AI로는 불가능하겠지만요

2026.02.09

2-(나) : 전문가가 일빈인 입맛을 맞출 필요 없다.
ai 탑티어 논문 리뷰 석사 막 입학한 애들이 리뷰하고 헛소리 하는거 맞춰줘야 댑니다

2026.02.09

논문이랑 판결이랑 같나
법이 일반 사람들한텐 더 밀접하게 다가올텐데, 국민 법감정과너무 동떨어져 있으면 문제라고 봐야죠.
악법도 법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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