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게시판에서 오고 가는 워라밸에 관한 대화를 거진 다 읽었습니다. 저는 어쩌다 보니 한국과 미국 대학원에서 각각 랩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데요,
제 결론은 결국 시스템이 갈등을 만드는 것이고 애초부터 힘든 터전에서 나고 자라 버티는 이들끼리 조금 더 공감과 이해를 가지자는 겁니다. 저는 그냥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하구요. 애석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국 사회에, 학계에 애정이 많고 진심으로 지금보다 더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남기는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 이미 잘 아시겠지만 A to Z 너무나 다른 문화와 자본 규모라 비교 자체가 어렵습니다.
한국 학계는 미국에 비해 어떠한 자원도 풍요롭지 않습니다. 때문에 인적 자원을 갈아넣어야만 성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어느 정도는 현실입니다. 사실 밖으로 나와 보니 더 잘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런 구조로 인해 무한한 노동이 당연시되고, 그 과정에서 착취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분한 마음들도 이해가 됩니다. 저 역시 월 28만원 받고 24/7 출퇴근하면서 월급 직전 주는 대용량 시리얼과 우유로 한 주를 버티던 라떼 시절의 한국에서 대학원생을 거쳤으니까요. 그 힘듦과 서러울 마음도 충분히 이해 합니다. 거기에다 대고 너가 그렇게 사는게 당연하다 당연한 처사인 줄 알아라 하면 진짜 누구라도 폭탄 만들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인간이라면 누가 그런 삶에 마땅합니까 버티고 버티는 것일 뿐 그것보단 더 잘 살아야함은 틀림없습니다. 그런 몰이해와 공감의 결여가 파국을 만드는 겁니다. 교수와 원생 간의 몰이해가 깊어만 지는 듯하여 안타깝습니다.
미국에 와보니 다들 뭐가 그렇게 여유로운지. 펀딩도 널럴, 재료도 설비도 짱짱, 원생들 월급도 널럴 학비는 엥간하면 올커버. 워라밸 논쟁할 필요도 터치할 없이 각자 알아서 하고, 유연 근무, 자율 근무, 재택 근무 몸 조금만 아프면 데이 오프에 멘탈헬스데이 셀프케어데이 반려동물 데이 패밀리 데이...... 그 와중에 여기도 갈등은 있어서 월급 적다고 재료 낡았고 구리다고 파업시위하는 박사생들...... 처음 와서 이게 대체 뭐지 싶기도 하고 참 부럽기도 하고, 우리 처지가 애석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어떡할까요?
너무나 좁은 사회 안에서 한정된 자본으로, 자원으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니 짜낼 수 있는 인적 자원만 박이 터지게 짜내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나버렸으니 말입니다. 거기에서 계속 쥐어짜내야 하는 PI들과 짜여지는게 싫은 원생들 사이에 골이 깊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참 마음이 착잡합니다.
사회 구조가 그래 버린 것을 익명으로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탓하고 게으르니 자세가 안되었니 뭐가 맞느니 틀리느니 착취하니 꼰대니 손가락질 하면 이 구조가 해결이 되나요? 하루 아침에 땅덩어리가 무한해지고 인구가 많아지고 자원이 펑펑 나오는 나라가 되나요?
얼마 전 이 커뮤니티는 망했단 글에서 역설적으로 가장 좋은 댓글을 읽었습니다. 절제된 표현으로 다른 시각을 열어주는 글을 보면서 배운다라는 댓글이었습니다.
다들 좁아터진 박터지는 사회에서 살아남느라 악만 설움만 남은 것 이해하나, 다들 학자답게 연구하는 사람 답게 당신들이 논문에 쓰는 바람직한 언어로 서로 다른 의견에 귀를 열고 들읍시다. 정제되지 않고 날선 말로 안그래도 박터지는 삶에 생채기만 남기는 아사리판은 이 커뮤니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만, 삶의 방식만 옳다고 남은 다 틀렸다며 다른 생각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도, 아니 생떼에 가까운 경직성도 도움 되지 않습니다.
원생들은 이 박터지는 사회 구조를 이해해야하며 같이 버텨주어야 합니다. 교수들은 힘든 시기 보내고 있는 원생들 어른으로서 너르게이해하고 비난 아닌 공감어린 마음으로 바라봐주어야 합니다. 이 사회와 학계를 애정하고 아끼는 간곡한 마음으로 당부드리며 긴 글 접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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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2025.10.10
미국도 미국 나름, 일반화는 금물~ 저는 백인교수랩이라서 웬만한 가정사로 인한 휴가 전부 양해해주고 재택근무도 가능했지만, 옆랩은 지도교수가 수시로 와서 연구실에 있는지 확인하고 감. 포닥/박사고년차 엄청 갈궈대고 내부경쟁 시켜서 포닥들 1-2년안에 몸이 망가지든 탈모가 생기든 정말 많이 봄. 심지어 조금만 맘에 안드면 연구실에서 쫓아냄. 미국이 전반적인 분위기는 좀더 자유로울순있어도 거기도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라서 PI잘 골라가야함. 동양인이 아닌 순수(?) 미국인인데도 그런꼰대마인드 갖는 사람들도 꽤있음.
2025.10.10
미국 포함 여러 해외 거치고 한국왔는데요.
1. 제일 충격. 교수가 행정일을 너무 많이 함. 행정처리 이런거 말고도, 단과대에 행정직원이 없어서 안전관리, 코어 퍼실리티 관리 이런거를 다 겸직을 해야함. 잡 회의들이 너무 많음. 내가 공부한 학교는 단과대에 행정직원이 교수 숫자만큼 있었음. 안전 직원도 3명이나 있었음. 한국은? 명문대인데도, 행정직원이 겸직도 엄청하고 직원수도 적음.
2. 나름 최고 대학인데, 학교에 돈이 없음. 왜 없는지 모르겠으나, 등록금이 일단 무지 쌈. 정부 지원금으로 돌아가니까, 교육부 사업을 안따르고 교부금 못받으면 명문대라도 철푸덕 넘어짐. 그래서 공무원들 말을 엄청 잘들음. 공무원들이 뭐 사업 하나 만들어서 하자고 하면, 다들 개처럼 따라감. 공무원들은 사업 성공 시켜서 승진할수 있으니 더 많이 시킴. 개같음.
3. 등록금도 없고 자체 재원도 없는데 기부금도 없음. 미국이 이게 유독 잘되어 있음. 다른 외국은 기부금 문화가 이렇게 크진 않음. 나도 미국가서 놀랐음. 유럽은 정부 재정으로만함. 좀 가난함. 미국은 기부금도 많고, 가끔 부자들이 연구 잘하는 랩에 와서 돈을 뿌리고 감. 우리 랩도 이름만 들으면 아는 은행 대표가 부부동반으로 자주 찾아옴. 5000억 건물 지어줌 (너무 특정될까봐 말 못하겠지만..). 그래서 출근할때 옷을 후줄근하게 안입음. 언제 뵐지 모르니까.. 아무튼 우리나라는 이런거 ㅇ없음. 재벌이 사랑에 2조원씩 박아버리고, 재벌이 외제 자동차 수집하는게 고작임.
4. 기업이 정부 재정으로 돌아감. 이건 분야마다 다르지만, 우리 분야는 알앤디 많이 하는데, 회사 투자가 없음. 그러니, 산학 잘안됨. 이름만 들으면 아는 대기업들도 신산업으로 우리 분야 많이 하는데… 가만보면, 새롭고 창의적인 투자가 아님. 걍 돈놀이 같음. 그러니 분야가 고여버림….
2025.10.10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