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기내식이 입맛에 잘 맛아서 비행기 수도 없이 타는 동안 단 한 번도 남긴 적 없음. 싹싹 긁어 먹는 타입.
문제의 그 날도 맛나게 먹고 영화를 보는데... 배가 살살 아픈거임. 아 이거 안되겠는데 하고 고개를 휙휙 돌리면서 화장실 상황을 체크하는데
국제선은 보통 화장실이 기내에 총 한 8개 이상 되는 것 같은데 내가 앉은 자리 앞 뒤로 모든 화장실이 다 '빨간불'인거야 ㅠㅠ
식사 시간 바로 직후라 그런지 화장실이 너무 붐비고 일단 양치하는 사람들이 다들 칫솔을 하나씩 입에 물거나 들고 화장실 앞에 대기중이 더라...ㅎㅎ
앉아서 1차 위기 겪고 안되겠다 싶어서 일어서서 화장실 줄 기다리는 동안 2차 위기... 거기다 대기 시간이 길다는 심리적 압박 때문인지 3차 위기가 오는거야.
나도 모르게 그만 문 열리자마나 젤 앞 사람한테 '제가 너무 급해서 그런데요 ㅠㅠ 죄송한데 먼저 좀 쓸게요 ㅜㅜ' 하고 대답도 듣기 전에 들어가버림... 양치질 시작하고 있던 그 사람 얼마나 당황했을까 ㅎㅎ. 그런데 그런 걸 신경쓸 수 있는 상황이 도저히 아니었음 ㅋㅋ
4만피트 상공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뒤로하고 나오니까 남는 건 부끄러움 밖에 없더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켰다는 안도감 약간하고ㅋ
자리 와서 앉았지. 그니까 옆자리 펠로우 아메리칸이 내가 안절부절하다 급히 들어간 걸 다 본거야... 그러더니 알유오케이 하면서 대화를 하는데... 기내처럼 사람 많고 화장실이 붐빌 수 있는 곳에서는 급한 볼일만 보고 바로 나오고 양치는 꼭 필요한 상황 아니면 도착하서 하는 게 매너라는 거야. 기내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버릴까 한 번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너무 공감되는 말이었음 ㅠㅠ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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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