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월요일에 교수님과 미팅이 있었다. 미팅주제는 세 가지.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나의 개인 연구에 해당된다. 마지막은 연구실 사람과 함께 진행하는 공동 연구이다. 반성을 하자면, 사실 개인 연구에는 많이 집중하지 못했다. 또한 공동 연구 볼륨을 많이 가져갔다고 해서 교수님께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개인 연구가 막막해서 (더 심하게 얘기하면 하기 싫어서) 잘 준비하지 못했다(핑계없이 ‘않았다’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교수님의 미팅 피드백은 생각했던 대로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굳이 개인연구를 아예 하지 않으려고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교수님의 실망한 얼굴을 뻔뻔하게 보려고 했던 의도가 아니었지만, 반응은 예상할 수 있었다. 미팅을 하는 동안 교수님께서는 ‘나의 박사과정은 말그대로 생존이었다. 그래서 절박함이 있었다. 때문에 완벽하게 빈틈없이 준비하려고 했다.’와 ‘미팅 동안에는 본인의 연구를 지도교수에게 끊임없이 설득하는 과정’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맞는 말이다. 연구실에 들어오기부터 지금까지 항상 들었던 말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미팅이 끝나고 점심을 먹는 약 30분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1. 나는 왜 교수님의 미팅 니즈를 충족하지 못하는가?
2. 나의 박사과정은 왜 절박함이 없는가?
3. 내가 박사과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크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로 정리되었다. 내가 연구라는 직업에 충분한 관심과 호기심,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구나.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를 가치관으로 여겼던 내가 이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오히려 미련과 아쉬움 보다 후련함이 컸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면 ‘나는 단순히 교수님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교수님의 지도방식이 나에게 맞는 방식이 아니라서, 교수님께서 신임이라 내가 기대고 얘기를 터놓을 선배들이 없어서, 공대라는 특성상 여대학원생이 많지 않은 외로움 때문에’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핑계였다. 나의 성향과 사고방식이 대학원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궁합이 좋지 않은 것이었다.
이제는 이 생각을 잘 정리해서 교수님께 말씀드려볼 생각이다. 교수님께서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초임이고, 특히나 내가 박사과정을 끝마치지 못한다면 연구실에 남아있는 학생들이 거의 없고, 또 신임 교수 특성상 사회적인 어떤 눈치 때문에 어떻게든 붙잡을 것을 잘 안다. 첫 제자라 많이 신경써주셨는데… 죄송한 마음도 든다. 하지만 지금을 나를 위해서, 나의 인생을 위해서, 주체적인 나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교수님을 위해서도 결단을 내릴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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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개
2022.07.12
저랑 상황이 같네요.. 저도 오늘 오전에 랩미팅하고 첫 제자 박사 과정인데 같은 마음이라 더 공감이 됩니다..
대댓글 1개
2022.07.12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학부연구생부터 지금까지 4년간 교수님을 봬어왔고, 이번 년도에 박사과정을 입학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고 싶고요, 교수님의 탓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이 과정과 이 시스템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어요.
다른 회사를 간다고 해도 지금이랑 다르겠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얘기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F : 5
2022.07.12
1. 미팅 니즈 충족하는 대학원생 얼마 없다. 교수가 보통 자기 포닥이나 말년차때(=연구실에 있었던 가장 최근의 기억)만 생각하고 누구든 다 그래야지! 하는 경향은 없는지 모르겠다
2. 그렇게까지 절박하야하나 싶다. 꼭 교수같은 사람만 대학원다녀서 박사되리란 법은 없다. 애초에 교수도 당시에 그렇게 절박했나 확인할 길이 스스로도 별로 없다.
안맞는건 알아서 생각하실 일이지만 꼭 그렇게 빡빡하게 판단하실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절박하게 막 뭐 엄청 해서 대학원생활 해도 그거 그렇게 길게 못가요.
대댓글 1개
2022.07.12
신고팩터 20개와는 다르게 지혜로운 댓글이...
언짢은 버트런드 러셀*
2022.07.12
나도 지금 중상위권 대학에서 교수 해먹고 있지만
박사과정 내내 항상 절박했냐고 하면 그건 절대 아니었음.
한 1년정도는 게임만하다 날린 해도 있고..
대댓글 1개
2022.07.12
1년 정도 게임만 했는데 교수 되신거면 애초에 찐 천재 아니신가요...
2022.07.12
공감되네요.. 저도 교수님 첫 제자인데 교수님 입장도 입장인데 나를 위해서라도 입장 정리해서 말하고 싶은 순간이 너무 많네요.. ㅠㅠ 화이팅
2022.07.12
미팅 때 교수님 니즈 채워 오는 대학원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매번의 미팅이 순탄하게 흘러갈거였으면 애초에 지도교수가 필요 없겠죠. 학부연구생-석사-박사1년차 쉼없이 보내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연구가 하기 싫을 수 있습니다. 지금이 그 시기는 아닌지 깊게 고민해보셔요
2022.07.12
네.. 다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신임 교수 랩의 단점이라면 하나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이런 고민이나 생각들이 들었을 때 조언해줄 수 있는 선배 하나 없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여기서는 공감이나 위로를 받을 수가 있네요..
좋은 고민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7.13
당신과 비슷한 상황에서 박사를 하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올해 지거국 교수가 되었음.
미래의 내학생이 겪게 될 모습같기도해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댓글을 남겨봄.
나는 지도교수를 많이 이용하라고 말해주고 싶음. 특히나 젊은 교수라면,
어중간한 선배들이 말하는 허세만 있는 사회비판과 좁은 시야에서 나오는 조언들보다는 그래도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교수의 조언이 더 현실적일 확률이 높음. 그리고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난 그 랩에서 박사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함. 결국 나의 앞으로 모든 진로의 레퍼런스이자 내 최종학위의 지도교수이고 내가 믿고 의지하고 조언을 얻어야 하는 사람도 지도교수니까.
1. 나는 교수의 니즈를 왜 만족하지 못 하나?
지금 박사과정 1학년으로 보이고, 그 중에 3개의 연구주제를 컨트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난 사실 이게 박사과정 1학년이 수업을 들으면서 다 할 수 있는 주제인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음.
당신의 일과와 일주일의 일정을 천천히 돌아보고, 평가해보길 바람. 정말 주어진 업무가 다 가능한 업무인지? 그리고 그러한 업무를 하기 위해 당신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이를 교수와 이야기하고 업무를 조율해보는게 좋을 것 같음. 당신은 학생임. 그것도 박사과정1학년. 잘하면 거기 있을 필요가 없음.
2. 나의 박사과정은 왜 절박함이 없는가? 3. 내가 박사과정을 하는 이유?
그리고 부끄럽지만 교수가 된 지금조차 나는 아직도 내가 왜 박사과정을 했을까?를 고민해보는데 거기에 답을 하지 못 하고 있음. 그냥 흘러가는대로 아무생각없이 살다보니 박사과정을 했고, 수료를 한 후에 오히려 살기위해, 박사라는 무게감과 기대감에 떠밀려 열심히 하기 시작한 것 같음.
절박함은 하나의 독립된 연구자로 성장해가면서 의도하지 않아도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그렇게 변할 수 밖에 없음. 그저 지금은 교수라는 품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당연한거임. 그 시간을 포기하고 스스로 절벽으로 몰아가지 말고 교수의 품 안에서
2022.07.13
"1. 나는 왜 교수님의 미팅 니즈를 충족하지 못하는가?
2. 나의 박사과정은 왜 절박함이 없는가?
3. 내가 박사과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3번은 별로 답 할 필요 없어요. 딱히 절박할 필요 없고, 박사학위 과정을 하는 이유도 필요 없습니다. 다만 내가 하고자 하는 연구에 대한 논리가 중요합니다.
"뭐가 문제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들이 있었죠? 본인이 하고자 하는 연구를 왜 해야하죠? 그 연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뭐가좋나요? 그 연구에서는 뭘 하죠?" 어때요. 그냥 논문 introduction이죠? 박사 학위라고 해서 딱히 엄청 다를건 없단 얘깁니다.
이외에 스스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연구를 했을 때 연구가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되죠?
2. 연구의 약점은 없나요? 약점이 있다면 critical 한가요? critical 해도 기초 연구라고 하면 비껴갈 수 있나요?
3. 얼마나 독창적인가요? 결과물에 개선이 있나요?
이걸 교수님에게 설득하면 됩니다. 논리 체계가 갖추어지고, 논리가 합당하다면 절박함은 필요 없어요.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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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2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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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2
202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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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2
2022.07.12
2022.07.12
2022.07.12
2022.07.13
2022.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