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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로서 우여곡절 우울증/불안장애 경험담

IF : 2

202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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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81

가끔 아무개랩에 우울증내지 걱정/고민 하시는 분들 얘기를 보다보니 제 경험을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은
1. 혹시 내 자신이 우울한것 같다 혹은 많이 불안하다 싶으면 꼭 일찍 상담받아 보세요.
2. 모든 연구자들이 정신건강에대해 스티그마를 없애길 바라는 마음에 서술합니다.

대학원가서 1순위 지도교수님의 랩에 들어가려고 했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리고나서 2순위 지도교수님 랩에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좋은 분야이고 해서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지도교수를 바꿨습니다.
지도교수님이 저를 피하시더라고요.
연락해도 답이 없고 오피스에 찾아뵈면
오후에 얘기할테니 부르겠다고 하셔놓곤
아무말씀 안하시고 퇴근때쯤에 엘레베이터 앞에
조금 파인곳에 몸을 숨기시면서까지 피하시면서 퇴근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마음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연구결과를 더 잘 내야겠다 싶어서 정말 밤새면서 했습니다.
그때 제 연인이 제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했었죠.

찾기 힘든 지도교수님을 복도에서 봤을때
잡아세우고 그만 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디 다른 랩에 갈때는 있냐는 말에
없지만 찾아보려고 생각중이다라고 했더니
알았다고 하시면서 빨리 자리나 비우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1순위 지도교수님을 찾아뵙고 몇년 시간이 지났으니 상황이 좀 다른가 싶어 여쭤보았습니다.
알았으니 일주일 시간을 달라고 하셔서, 꼬박 일주일후에 찾아뵈었지요.
저를 보시고 계속 연구해서 학계에 남고 싶으냐고 물으시길래 그렇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럼 다른 랩을 가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랩을 통해 학계에서 성공할 싹이 안보인다고....

벌써 호랑이 담배필시절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 기분이 선명합니다.
아 이렇게 내가 정말 어릴적부터 꿈꾸던 길이 접히는구나....

그리고는 이랩 저랩... 우여곡절끝에 5순위 교수랩에 들어갔습니다.
테뉴어도 안받은 젊은 방금 임용된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인생의 한수가 될줄은 몰랐네요.
아직도 제 지도교수와 편하게 대화하고 조언을 구합니다.
그리고 승승장구. 포닥도 좋은자리 미국서하게 됐죠.
(참고로 제가 있었을때 1/2순위 교수랩 학생들 중에 미국포닥 잡은 사람이 없습니다.
혹시 실력이 없으시냐? 왕년에 2000개 사이테이션 넘은 페이퍼 몇개씩 쓰신분들입니다.)

잘되나 싶었더니 그것도 잠깐 포닥도 아주 힘들더군요.
포닥 시작하고 첫 2년동안 페이퍼가 한개도 안나왔습니다.
일은 무진장 많이 하는데 아무도 안알아주고
학회가도 딱히 내세울건 없고
그러다 3년차에 페이퍼 하나 더 좋은거 쓰고 교수자리 지원했지만 차갑더군요.
그렇게 다 거의 서류수준에서 리젝 당하고 다시 힘들었습니다.

그때 반려자의 권유에 정신과 상담을 받았죠.
알고보니 대학원때부터 내내 우울증에 불안장애에 시달리던거였더라고요
그러고보니 왜 일이 잘 안잡히고 시간은 쏟아붇지만 그에 상응되는 결과가 안나오는지 알겠더라고요.
결국 보니 우울증/불안장애에 따라서 마비된거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정기적으로 상담받고 약먹고 있습니다.
아주 인생이 바뀌더군요.
하아... 맞아 이런거였구나 "정상인"의 삶이라는게
어릴때 별 걱정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던 삶으로 돌아가더군요.

생각해보니 그렇더군요 박사받고 미국서 포닥도 해본 사람이 무슨 인생에 걱정이 있겠습니까?
굶어죽을것도 아니고 다 개인 욕심이고 스스로를 우울증/불안에 몰어넣고
그런 내 자신을 인지 못하고 스스로 영혼을 갈아넣어서 연구만하며 핍폐된 인생을 살고
그리고 더 일의 효율은 떨어지고 영혼을 더 갈아넣고... 반복...

그리고 나서 조심스레 주변 포닥과 얘기를 해보았더니 놀란 사실이 저말고 항우울제 먹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전부 다들 똑같이 얘기하더군요.
걱정이 부풀어올라 스스로를 마비시킨다고.
사실 욕심때문에 그렇지 "정상인"이 걱정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이 글을 읽으시는분중에 자신을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드시는 분이 있다면 꼭 상담받기를 권유합니다.

특히 펜데믹 이후에 미국에서는 좀 분위기가 바뀌는것 같아요.
연구자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더 솔직히 얘기하고 스티그마를 없애려는 하는 노력들이 보입니다.
학회에 가면 연구자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션들이 생기고
학생/연구자 인권 보호관련된 세션들이 있더라고요.
한국도 비슷한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없다면 있었으면 좋겠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구도 중요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가는것도 좋지만
인생은 계획되로 가는것도 아니고 정신건강도 "건강"지키는 일임을 잊지마세요.
1/2순위 교수님들한테 무시당하다가 "5순위" 교수 만났지만
그래도 주변 누구보다도 사실 지금까지 잘 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다 끝난줄 알았었고요. (아직 포닥도 힘들긴 하네요.)
힘든 얘기를 하면 유리멘탈이라고 놀린다거나 무시하지 않고
솔직히 힘든 얘기를 나누고 더 격려하고 서로를 위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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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1개

2022.06.14

저도 이번에 정신의학과 예약했어요. 미팅 전날에 손이 마구 떨리고 정신이 아득해지더라구요. 몇 달 동안 미팅 날만 되면 아침에 몸이 안 일으켜지고 소화도 안 되고, 이 상태로는 위험하다 싶었습니다. 병원 예약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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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 5

2022.06.14

글 보시는 누군가 지금 힘들다면 부담없이 약 드세요. 내 앞에 차례 기다리는 수많은 환자들(요새 정신건강의학과 예약잡기 힘들어요) 보면서부터 아 다들 이렇구나 잘왔구나 생각 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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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6

저도 최근에 정신건강의학과 예약했습니다. 정신과나 심리상담센터라는 자원을 더 많은사람이 이용했으면 좋겠네요. 모두 아프지말고 건강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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