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있는 연구가 전혀 진전이 없게 된지 벌써 3개월이 넘었고, 작년부터 해온 일이 이렇게 결과가 안나오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사실 뭘 위해 이 연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답답하기만 합니다. 저는 이 일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걸 알아서 그냥 관두고 싶은데, 주변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제 모습 밖에 모르니 너는 잘하고 있다, 힘내라, 잘될거다 하면서 응원만 해주고요. 그럴 때마다 정말... 네가 뭘 아냐고 하나도 안 잘했고 전혀 잘 될 기미가 안보인다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다고 절 걱정 해주는 사람들한테 그럴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고맙다고 하고 넘깁니다.
사실 이렇게 된 건 다 제가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저는 노는게 너무 좋고, 게으르고, 하기 싫은 일은 뒤로 미뤄버리기 일수입니다. 논문 읽는 것보다 유튜브 5분 잠깐 보는게 너무 좋고, 실험은 최대한 미뤘다가 해야겠다고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제야 하곤 했습니다. 논문만 좀 제대로 읽었어도 지금처럼 답답하진 않았을텐데, 당장 지금도 논문 읽을 생각보다는 10분만 더 침대에 누워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뿐입니다. 게다가 결국 논문은 안 읽고, 불안해 하면서도 결국 김박사넷에 글이나 쓰고 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싫습니다. 교수님은 계속 결과를 가져오길 바라시는데, 그냥 자퇴 해버리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래도 도망가기는 싫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올 때부터 무슨 일이 있어도 자퇴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들어왔습니다. 한심한 저를 끝까지 참아내고 어떻게든 한 번 이겨 내보려고 합니다. 논문도 읽고, 실험도 더 열심히 해서 무엇이든 유의미한 결과를 내고 졸업하고 싶습니다.
저는 너무 수동적인 사람입니다. 누군가가 정해준 길대로 그냥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무 생각 안하고 시키는대로 일만 하고,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 아니라고 그냥 회피하고 싶습니다. 저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도 뭔가 해보고 싶고 이번에는 힘들다는 이유로 그냥 도망가고 싶지 않습니다. 교수님께 여태동안 제가 얼마나 태만 했는지 말씀드리며 제대로 다시 바로잡아 보고싶습니다. 3학기 차 학생에게 조금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해보고 싶습니다. 남에게, 저 자신에게 좀 더 당당해지고 싶습니다. 이렇게 남을 부러워만 하다가 졸업하는건 정말 싫습니다. 이 이상 저 자신을 혐오하고 싶지않습니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저에게는 저 자신을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여 짧게나마 글을 써봅니다. 타인에게 목표를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는지 알고 있어서, 익명의 힘을 빌려 글을 남겨봅니다.
내년 이맘때쯤엔 이런 글을 썼다는 것조차 잊을만큼 후회없이 살고있길 바랄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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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개
2022.04.06
비슷한 상황에 놓인 대학원생으로서 참 고민이 많아지네요..응원합니다!
2022.04.06
석사과정 또는 석박통합과정 초기에는 크지 않은 주제로 연구를 하고 투고까지의 과정을 빠르게 경험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은 것 같습니다. 일단 투고 또는 퍼블리쉬까지 가야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고 다시 열심히 할 동력으로 돌아오는데 이걸 한번 겪어보면 괜찮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글쓴이처럼 연구에 흥미를 잃기 쉬운 것 같아요.
글쓴이같이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 건 보상이 바로 앞에 보이지 않기때문이에요.. 어쩔수없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조금만 더 힘내시길. 연구가 재미있어지면 딴짓하는 시간도 줄어들거에요
2022.04.06
어떻게든 예쁜 똥이라도 만들어서 석사졸업까지는 하세요
대댓글 1개
2022.04.06
ㅋㅋㅋ 의외로 예쁜 똥을 아주 기가 막히게 만들어서 상당히 괜찮은 저널에 출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2022.04.06
너무 공감이되어서 글 남깁니다.. 우리 모두 힘내봅시다...
2022.04.06
제 주변에 글쓴이와 똑같은 분이 있었는데 대학원 그만두고 의대가서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 그냥 시키는대로 공부만 하면 돼서 좋다더군요..
2022.04.06
게으러서 그렇다고 너무 채찍질 하지마셔요. 왜냐하면 우울증이 심하면 그렇게 해야할 일 할 의욕이 없어지고 그렇거든요. 꼭 석사 졸업까지 마치실 수 있길 바랄게요!
2022.04.07
지금 박사 3학기 완전 비주류 공대입니다..
참.. 비슷한 고민 많이 하실겁니다 다들.
애초에 저희 분야는 소재나, 전기, 기계(모두가 그렇진 않겠지만 겪어보지못한 제 기준에선 그냥 그쪽 분야 종사자 분들이 하실게 많아보이더라구요..) 처럼 졸업해서 할수있는게 많지도 않고 학위가 왜 필요하냐 하는 분야 쪽이라 매번 이게 맞나.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고민을 정말 많이했고 지금도 하고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웹툰에서 그런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니가 나가서 노래를 불러도 학위는 쓸모가있다고 꾹참고 정붙여보고 노력해볼려고합니다.
사소한것 하나, 하루에 하나이렇게 작게라도 바꿔가면 나중엔 큰 결과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대한민국 선진국이지만 대학원생분들, 연구실에 계시는 모든분들에 대한 인식이나 복지는 아직까지 부족한것같습니다.
어려운길을 택하신 여기 계신 모든 분들 화이팅 입니다.
IF : 1
2022.04.07
석사는 마쳐요 박사는 하지말고
재밌는 장 폴 사르트르*
2022.04.08
석사 울며 보내고, 박사는 절대 안하리라 다짐했지만...결국 박사도 끝내고 관련분야에서 꾸역꾸역 일 하고있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 아무도 그 앞날 모릅니다.
2022.04.08
제가 술취해서 썼나싶을.....
용감한 제임스 맥스웰*
2022.04.08
저도 석사 3학기찬데 너무 힘들어요.. 너무 다 관두고 싶은데 관둘수가 없어요 자존심도 너무 상하고 자존감도 너무 낮아지는데 관둘수가 없어요.. 교수 너무 사이코 같아요 학생을 위하는척 교육자 마인드인척 온갖 척을 다하더니 이제와서 하나하나 트집잡고 일하는것 사사건건 트집에 싫어하는 티내고 감정소모하게 만들고.. 그럼 진작 피드백을 제대로 주던가.. 지시를 제대로 하던가.. 하.. 너무 멘탈이 나가네요
2024.06.15
이 글이 왠지 공감되고 격려 받는 느낌이라 감사한 마음에 회원가입하고 댓글 작성해봅니다ㅎㅎㅎ 2년 전 글인데 지금은 잘 지내시나요
저도 노는 걸 더 좋아하고 철 없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멘탈 약하고 몇달 째 도피 중인 논문 학기 석사생입니다..
몇달째 논문 이론적 배경에서 멈춰 있는데 제가 게으른거 같고, 말은 하는데 행동은 그렇게 안 하고
랩의 다른 사람들도 다들 힘들어하지만은 좀 더 건강한 방식으로 대학원에서의 힘든 거를 극복해나가서
"내가 멘탈이 안 되는 거 같은데..내 문제인데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막막하고 외로운 느낌이었어요.
근데 안 하고 계속 도피하면 시험공부를 몇달 간 도피하다 시험날 현타 오는 딱 그 느낌인걸 알면서도 할 말이 없어요 (시간이 걸리는 일들은 그런거 같아요 보상 지연ㅎㅎ)
힘들어서 그냥 이 길 자체를 가지말까, 진로 다른 길로 가볼까 생각 많이 들었는데 이 글 보면서 이상하게 '나도 정신 차리고 논문을 완료하고 싶다'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쪽은 그냥 진로로 하지 말까라는 생각까지 했는데도..논문은 잘 써놓고 싶다는 게 웃기네요
어쨌든 저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니 너무 반가워요ㅠㅠ.. 저는 스스로가 대학원 사람들보다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스스로가 이럴 수 있다고 인정하는 게 어려웠는데 :)
2022.04.06
2022.04.06
2022.04.06
대댓글 1개
2022.04.06
2022.04.06
2022.04.06
2022.04.06
2022.04.07
2022.04.07
2022.04.08
2022.04.08
2022.04.08
2024.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