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을 잘 달진 않지만, '제가 아이 인생을 망친 걸까요...' 라는 내용 때문에 지나칠 수가 없네요.
서강대나 한양대나 인생 살면서 큰 차이가 없습니다. 더 큰 차이는 학생 개개인이 만들어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양대 나와서 백수로 살수도 있고, 서강대 졸업하고 MIT 유학갈수도 있죠. 다 본인이 하기 나름입니다.
그런데, '본인이 하기 나름'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꺾어버리는 것이 바로 지금 부모님이 하고 있는 치맛바람입니다. 1. 컴퓨터쪽 전문가도 아니신것 같고 2. 취업분야 전문가도 아니신 것 같으며 3. 심지어 학생때 공부를 잘하신것 같지도 않군요. 즉, 길라잡이로서의 역량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티끌같은 디테일에 집착하고 계신다면, 자녀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본인이 스스로 해내는 능력'을 처참하게 짓밟는 결과밖에 남지 않습니다. 자녀분 죽을때까지 평생 케어하면서 사실건가요? 설사 그런 능력이 된다 하더라도, 그 방법은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 가장 덜 사람답게 사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사람으로서 최소한 갖춰야 할 도리를 할 수 있도록 가이던스만 주고, 나머지는 자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To do list를 적는게 아니라 Not to do list(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결과만 좋기를 바라는 태도 등)만 어른의 관점에서 교육하는 것입니다.
이런얘기 해도 바뀌시지 않을 가능성이 99%라는걸 알고 있지만, 1%의 가능성 때문에 남깁니다. 솔직히 말하면 학부모님은 전혀 걱정 안되고, 저 환경에서 자라고 있을 자녀분이 매우 걱정됩니다.
기계화 문명은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듯하다. 농촌에서는 과거 n 명의 사람이 하던 고된 작업을 이제 단 한 대의 스마트 농기계가 처리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n 값은 계속 커지고, 이에 따른 일자리 감소로 사람들은 농촌을 떠난다.
산업... 우리나라의 오래된 (소/중/대) 기업 임원 및 사장님들이 좋아하는 단어다. 한국은 서구와 일본의 기술패권주의적 산업화의 물결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이 분들은 대한민국의 급격한 산업화시대에 창업을 하시고 기업을 성장시켜오신분들이다. 이 시대에는 불량률, 작업속도, 매출 같은 정량적 지표들이 중요했다. 인간 작업자들은 컨베이어 벨트 주변을 서성이는 거대 생산설비의 부품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오전8시-오후7시라는 가혹한 노동시간, 정형화되고 반복적인 답답한 노동환경속에서도 노동자들은 회사에 대해 충성심을 갖고 일했다.
이러한 전통적 공장환경이 이제는 스마트팩토리로 전환되고 있다. 원격지에서 전체공정을 컨트롤하는 소수의 인력만이 필요하게 되고, 기존 노동자들이 차지하던 수작업 포지션들은 로봇으로 대체되어간다. 기업의 성장 = 국가의 성장이라는 애국심 마케팅도 이제는 힘을 잃어간다. 어차피 기업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초과 이익은 고위 임원들과 지분을 많이 가진 투자자들의 몫이다. 기업들도 노동자들을 덜 필요로하고, 노동자들도 기업에 대한 충성심을 상실해간다.
노동집약적 사회에서 개개인의 여가가 증대되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이제 자명해보인다. MZ 세대들도 무의식적으로나마 패러다임 쉬프트를 인지했는지, 이제는 '워라벨' 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은 문제는 두 가지 정도 인것 같다.
1. 이제 인간은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하는가? 2.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사회 패러다임에 아직도 사로 잡혀있는 우리 50-60 대 임원 및 사장 '님' 들에게 "그 시대는 이제 끝났어요. 패러다임 쉬프트를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라고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1번의 경우, 개개인의 여가시간을 풍족한 자기계발 시간으로 가지면 좋을것이다. 논문들을 보며 개인의 학술적 능력치를 상승시킨다든가, 배운 내용들을 공동체에 전파하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공동 선을 추구하는, 일들이 일단 해볼만한것같다. 더 나아가, 남들의 여가시간도 책임져줄수있는 '컨텐츠가 풍부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자기주도적으로 능력치를 쌓아올리는 습관을 들이고, 평소에 다독 해야함은 자명한것같다.
2번의 경우, 꽤 어려워 보인다. 수십년간 뿌리박힌 노동집약적 패러다임의 망령을 이분들의 정신속에서 어떻게 뽑아낼 수 있을까. 모 중소기업에서는 2030들의 퇴사율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MZ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회사의 모습과 5060 임원분들의 오래된 '경영철학' 사이에 괴리감이 커서, 견디지 못해 떠나는것이 아닐까. 나는 이 나라의 기업들을 산업화의 물결속에서 수십년간 이끌어오신 5060 경영진들분들에게 그간 수고하셨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제 시대가 변했습니다. MZ 들을 오래 붙잡아두고 싶으시면 패러다임 쉬프트를 받아들이시고 회사도 그에 맞게 새 단장을 해야합니다" 라고도 말씀드리고 싶다.
참고서적: THE END OF WORK: The Decline of the Global Labor Force and the Dawn of the Post-Market Era, by Jeremy Rifkin (번역서: 노동의 종말, 이영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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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2024.01.21
2는 문제없음. 어차피 설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안오면 바뀌게 되어있음. 알아서 바뀌어서 필요한 인력은 확보하겠지.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산업혁명 때 그러했듯이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 자체가 줄면 원글처럼 눈높아진 MZ 중심의 인력들의 기대치와 현실 취업 상황 및 수입의 차이가 더 커지는데 있음. 기술 발전해서 노동이 덜 들어가면 내 자유시간이 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짤리는 거지. 나를 그 돈 주고 고용하면서 자유시간을 많이 줄리가..
2024.01.21
윗 댓글에 동의합니다. 워라벨, 자기계발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질 것 같아요. 그리고 MZ가 원하는 워라벨은 퇴근 후 자기계발을 통한 "컨텐츠 풍부하게 만들기"와는 거리가 먼 것 같고 "콘텐츠 소비하기", 그냥 한마디로 "놀기"와 더 가까운 것 같네요 (넷플 유툽 시청, 핫플, 맛집, 인스타 등).
2024.01.21
2024.01.21
대댓글 1개
202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