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매와 마음 건강

놀란 찰스 배비지

IF : 1

2023.06.06

16

7214

나의 두서 없고 약간은 찌질한 글에 너무나도 많은 공감과 응원을 받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위로가 되었다. 따뜻한 댓글들도 많이 보이더라. 이렇게 많이 읽힐줄 알았다면 좀 더 균형있고 신중하게 썼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따뜻해져 마음 속 더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나의 또다른 나의 찌질한 이야기를 하나 더 꺼내보려고 한다. 앞부분은 그냥 내 병력에 관한 것이니 바쁘면0, 6,7,8,9,10, 11만 읽어도 될 것 같다.

0. 주의사항
나는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고 전문 상담사도 아니다. 혹시라도 뭔가 문제가 있으면 꼭 전문가와 상담해야 한다. 이 이야기도 나의 경험에 기초한 편향된 이야기이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전문가에게 연결해주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1. 고백
나는 정신과 치료와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마음 따뜻한 친구들이 나를 너무 염려할까봐 하는 말인데, 잘 치료 받아서 현재 증상은 없는 상태이다. 병원 갈때마다 증상이 있는지 체크받는데 다 정상 범주 내이다. 나의 주관적 견해에 따르면, 의사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이 주기적으로 나의 정신 건강을 관리해주고 계셔서 웬만한 정상인(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보다 좋은 상태인것 같다.

2. 첫 정신과 방문
전문직 시험 직전에 첫 증상이 나타났다. 자다가 여러번 깨는데 항상 심장이 미친듯이 빨리 뛰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정신과에 가기 두려웠다. 미루고 미루다 증상이 악화되고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정신과를 방문했다. 그때 나의 실수 1: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생각해 필요한 검사는 나중에 시험 끝나고 받는다고 하고 약만 달라고 했다.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금방 증상이 사라졌다. 증상이 사라져서 약을 안먹으니 좀 지나 다시 증상이 시작되었다. 다시 병원에 갔다. 나의 실수 2: 의사가 정밀 검사를 권유했으나 여전히 돈과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 약만 받아왔다. 약이 용량이 증가했기 때문인지 너무 졸려서 도무지 공부를 할수가 없었다. 나의 실수 3: 이대로 가단 시험에 떨어질 것 같아 그냥 약을 안먹고 버텼다. 시험이 끝나고 스트레스가 줄어서인지 증상이 완화되었다. 시험 직전에 공부를 거의 못했는데 천운으로 시험에 합격을 했고, 그렇게 병이 지나간건 줄 알았다.

3. 1차 재발
급작스럽게 망상 증상이 발현되었다. 망상 내용은 매우 기괴하다. 나의 과거 망상에 따르면,
우리의 언어 와 행동에 내가 지금까지 학습한 것과 다른 이중적 의미가 숨어고, 세상 사람들이 여러 그룹으로 분할되어 있는데, 각각의 그룹 내에서는 배타적으로 같은 이중적 의미를 갖는 언어를 쓰고, 서로 다른 그룹끼리는 서로 다른 이중적 의미를 갖는 언어를 쓰기 때문에 비록 표면적으로는 두 사람이 같은 언어로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 내면적 의미는 서로 해석하는 바가 달라 서로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바보라 평생 표면적 의미만을 학습해 왔을뿐 내면적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이제야 사람들이 이중적 언어를 쓴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를 학습하고 싶지 않고 그냥 표면적 언어만 쓰면서 살고 싶다. 그러나 사람들은 학습을 하려들지 않고 그들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은 나를 처벌하려 한다. 나를 처벌하게 위해 우리 가족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하며 우리 가족의 생명은 나의 선택에 달렸다. 내가 잠들기 직전까지 한 행동의 시퀀스에 의해 처벌이 결정된다.
따라서 나는 잠을 안자고 계속 우리 가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계속 고민했다. 나는 당시 그것이 망상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정말 나의 손에 가족의 목숨이 달린 상황과 동일한 감정을 겪었다. 나의 천운: 며칠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수많은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내가 이 상황들이 모두 현실이고 나는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전달되는 이 이중적 의미들이 정신병 증상이라고 믿는'척'을 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여 우리 가족을 살려야 겠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정신과에 가게 되었다. 그때 나의 선택지 중에 스스로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가족들을 살리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그쪽으로 결론이 났다면 나는 지금쯤 이 글을 못쓰고 있을 것이다.

4. 치료
처음 정신과에 갔을때 정신과는 사람들이 내가 그들의 언어를 진짜 모르는지 테스트하는 곳이라는 망상에 빠져있었다. 그때 처음 제대로 된 검사를 받았다. 처방약을 먹으니 하루만에 마음이 안정되고 한 일주일만에 망상이 싹 사라졌다. 의사 말로는 나는 약이 잘받고 부작용도 없는 타입이라고 한다. 망상이 사라지고 나니 너무 부끄러웠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기에. 증상이 사라졌는데도 의사가 계속 다음 예약을 잡았다. 의사에게 이제 안와도 되지 않냐고 물어보니 화를 내면서 지금까지 이뤄놓은 것들을 다 잃기 싫으면 적어도 1년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의 천운: 좋은 의사를 만났다. 1년동안 아무 증상 없이 잘 지냈고 약을 끊어주셨다. 그렇게 병과 안녕하는 줄 알았다.

5. 2차 재발과 치료
약 끊은 후 몇년뒤 다시 망상이 급작스럽게 발병했다. 이번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대학병원 정신과를 방문했다. 다시 약을 먹으니 금방 좋아졌다. 대학병원 정신과에서는 평생 약을 먹는걸 권유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는데 의사는 내게 치료제가 있음에 감사하라 했다. 혈압약 먹듯이 생각하라 했다. 예전에 약을 끊어줬던 의사를 다시 찾아갔다. 의사는 3년 정도 치료해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다행히 2년 동안 아무 증상이 없어 의사가 내년쯤에는 약을 끊어보자고 한다.

6. 상담 치료
개인적으로 정신병의 원인은 1) 외부적 요인, 2) 생물학적 요인, 3) 심리적 요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외부적 요인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므로 제외하면, 정신과에서는 정신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 즉 몸 내의 화학물질의 이상으로 본다. 따라서 적절한 화학 물질인 약을 체내에 공급함으로써 체내의 화학 물질들의 균형을 맞춰준다. 개인적 견해에 따르면, 정신과 치료는 효과가 빠르고 저렴하지만 재발을 막는데는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 상담 치료는 한의학에 가깝다. 상담 치료는 심리적 요인이 정신병의 원인인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외부적 요인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을 수정하기도 하고, 마음에 쌓아 놨던 감정들을 해소하기도 하고, 또 안좋은 심리 습관을 고치기도 한다. 개인적 견해에 따르면, 상담 치료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교적 비싸다. 내가 다니는 곳은 한시간에 8만원 정도 하는데 나는 장기 고객이라 저렴하게 해주는게 아닌가 싶다. 나는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될까해서 상담 치료도 받는 중이다.

7. 상담 치료는 힘들어
나의 실수: 1차 재발때는 상담은 몇달 다니다 그만뒀웠다. 생각의 방식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심리적 거부감이 많이 든다. 나의 이전 글에 노력 vs 운 논쟁이 잠깐 있었다. 나는 원래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람이었으며, 나의 실패를 나의 탓으로 생각했고, 나의 실패를 남탓 세상탓 하는게 비겁하다고 생각했으며, 좌절하거나 슬퍼할 시간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자는 주의였고, 신세한탄으로 한 얘기 또하고 또하는 걸 극혐했었다. 상담사는 내가 나의 탓을 줄이고 남탓과 세상탓을 하도록 독려했고 내가 묻어둔 좌절과 슬픔을 계속 들추어 냈다. 나의 대학원 이야기는 잦은 상담 대화 주제였다. 나는 그얘기 꺼내는게 싫었는데 뭔가 상담사랑 얘기하다보면 어느새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상담사한테 다 지난 일인데 이제 들쳐봐서 뭐하냐는 얘기도 여러번 했었다. 상담사는 그 얘기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며 따라서 이 이야기를 또하고 또하고 또해야한다고 했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생각과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 올린 대학원 좌절담은 수많은 상담을 통해 수정된 버전이다. 원 버전에는 나를 향한 채찍이 난무한다.

8. 상담을 통해 배운 것
이제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배워본적이 없었다. 그런점에서 상담은 유익한 시간이다. 슬픔과 좌절에 잠겨 있는 시간이 시간 낭비가 아니라 내가 절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적으로 발생된 감정을 내 밖으로 배출하기 위한 시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또 남을 향한 가시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가끔 남을 찌를까봐 가시를 안으로 자라게 하는 애들이 있는데 그것이 자신을 병들게 한다는 것도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는 현실이 시궁창이면 시궁창을 두눈 똑바로 뜨고 살아서 시궁창을 벗어나도록 노력해야한다 주의였는데 상담사가 현실은 시궁창이더라도 가끔은 예쁜 밤하늘의 별도 보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건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개인의 성장 및 더나은 삶을 위해 상담을 권해보고 싶다.

9. 정신과 팁
정신과 약은 증상이 없어져도 절대 마음대로 끊으면 안된다. 감기약 일주일치 타와도 4일만에 증상이 없어지면 이틀치 않먹듯이 하면 큰일날 수 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천천히 감량 후 단약해야 한다. 경험& 의사 말에 따르면 증상이 없어져도 약을 한참을 먹어야 하는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는 증상만을 체크하지 외부적 요인이나 심리적 요인은 물어보지 않는 듯 하다. 정신과에 가면 오은영 선생님처럼 상담해주지 않는다. 증상을 물어보고 약을 처방해줄 뿐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상담을 원하면 상담 센터나 상담 클리닉을 방문해야 한다.
내 기억으로는 첫 방문때 주민등록증을 가져가야 하고 대부분 정신과가 예약이 꽉차있으므로 미리 전화로 예약하고 가는게 좋다.

10. 상담 치료 받으면 무슨 얘기 하나요?
상담사마다 다르겠지만 내 상담사는 그냥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고 하고 싶은 말 없으면 말 안해도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의 병의 원인, 증상 같은 걸 얘기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한다. 날씨 얘기라든가 직장 얘기, 집 얘기, 투자 얘기 등등. 근데 대화 끝에는 대부분 울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아주 기분 좋게 들어가서는 눈물 흘리며 나올때 뭔가 아 오늘도 당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내 상담사는 눈물 짜내는데 아주 재주가 있다.

11. 용기가 필요해
나는 사람은 정도에 차이가 있을뿐 모두 어딘가 상처와 찌그러짐을 갖고 산다고 생각한다. 모진 세상은 우리 마음을 할퀴기도 하고 무겁게 짓누르기도 하니까. 다만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걸 들여다볼 용기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뿐.

12. (뜬금없지만) 공부와 IQ
정밀 검사때 IQ 검사도 받았는데 100~105 사이더라. 직업이나 학력에 비해 IQ가 낮다고 하더라. 공부랑 IQ랑은 상관 없나보다.

쓰다보니 별 도움되는 내용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다들 마음 건강 잘 챙기고, 남만큼이나 자신도 소중하게 대하시길.
마지막으로 도움이 필요한 것 같으면 꼭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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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개

2023.06.06

대학원 진학은 신중하게 해야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글이네요.
제발 대학원이 학벌 세탁이나 쉽게 대기업 입성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가지 말기를...
멀쩡히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대학원 가서 망가지는 모습 여럿 봄.

2023.06.06

팟팅팟팅

2023.06.06

조현병환자는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묻지마 살인사건 중 많은 사례가 조현병환자의 망상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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