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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문과 박사 하면서 느낀 점입니다.

IF : 1

2021.12.06

33

58439

학부는 ky 중 하나 졸업했고 대기업 5년 다니다가 슬럼프와서 그만두고 (1차 잘못)
미국 (서부 상위권)에서 미학 석사 2년 하고
일본현대미술(미학) 역사 등등에 관심 있어서 일본에서 박사하고 있습니다. (2차 대 잘못)
나이는 좀 있는 편이예요. (내 잘못은 아니지만 3차 잘못)

일본에서 이과 박사 하신 분이 쓴 글 읽었는데 대체로 공감합니디만, 문과랑 상황이 너무 달라서 글을 씁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일본 대학원 과정 이공계는 그나마 할만하지만 문과는 웬만하면 오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혹시나 일본에서 문과로 대학원 다니시려는 분들 있으시면 읽어보고 고민 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장학금

일본에서 대학원 다니면 대체로 학비 면제 된다고 오해하시는 분들 많은데, 단연코 이건 국립대 한정이고요.

제가 아는 XX는 사립대에서 전장 받고 다니는데요? 라는 댓글이 달릴 수 있으니 첨언을 하자면
사립대에서 전장 주고 모셔 올 정도의 한국인 문과 인재는 (대학원생들 사이에서 이름 날릴정도나 저널 pub이 많은 경우)
일단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사회과학대는 있을 수도 있겠네요. 물론 실제로 들은적도 본 적도 없어요.

문과에서 이렇게 뛰어난 한국분이 계시다면 아마 미국을 가셨을거예요.
아님 일본에서 학부부터 박사 까지 쭉 하거나 석박사를 일본에서 하시는 분들의 경우는 다릅니다만,
역시 전장 받고 "사립대"에서 석박 하시는 분은 단연코 본 적 없습니다.

사립대, 예를 들어 와세다, 게이오, 소피아 등등 장학금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까지는 아니어도
학비+생활비 커버 불가능 수준의 소액입니다.
자쏘 장학금 48만원 정도 주는 건 운 좋으면 거의 받을 수 있는데
이거 박사 끝날 때 까지 보장되는 펀딩개념의 장학금 아닙니다.
매 학기 마다 신청해야 합니다.신청한다고 다 주는 것도 아니니 참고 하세요.

그리고 나이가 만 35세 이상이신 분들은 애초에 장학금 신청 자체가 안됩니다.
각종 Grant, fellowship등등 지원하는 것도 나이 제한 많고요. 이과랑 전혀 상황이 다릅니다.
치의예, 이과, 자연계열은 만 40세 이상 주는 사비 장학금 많지만 문과는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나 나이가 35세 이상인데 일본에서 문과 석박 하고 싶으신 분들은 돈 많고 여유 있으신 분들만 가세요.
참고로 사립대는 학비도 비쌉니다.

2. 일본어

도쿄대나 히토츠바시 혹은 도쿄 공대 문과 (도쿄공대도 문과 있습니다.) 가시려면
일본인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일본인들이랑 토론 할 수 있는 정도, 그니까 그들에게 꿀리지 않게는 하셔야 합니다.
이것도 이과랑 상황이 다르죠.
이과는 실험이 많기 때문에 수준급으로 영어나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 일본어 하지 않아도 좋은 논문 쓸 수 있고
교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교수 할 정도면 일본어는 어느 정도 되어야 겠죠)

그러나 문과는 애초에 보여줄 것이 말빨과 글빨 밖에 없습니다.
이거 안되면 문과는 (한국도 마찬가지) 애초에 학계에 남기 힘듭니다.
물론 말 잘 못해도 글 잘 써서 교수 되시는 분들 많지만, 일단 그 정도 수준 되려면 실력이 있는거고
운도 엄청 따라줘야 합니다.

단순히 JLPT 1급 있어요. 이걸로 해결 안납니다. 그리고 일본 오면 일본어 실력 확 늘거 같죠. 생각만큼 안늘어요.
제가 알기론 (지금은 바뀌었을지 모르니 각 학교 홈피 체크 해보세요) 일본인과 똑같이 논문 쓰는 수준 되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가 있어요. 교수랑 잘 아는 사이어서 어느 정도 일본어가 네고 되는 상황도 있겠지만
제가 실제로 본 적은 없습니다. 특히 도쿄대랑 히츠는 무조건 일본어 >>>영어 입니다.
제 주위에 도쿄대 문과 석박 하시는 분들 일본어-> 한국어 번역 하는 수준으로 잘합니다.
(이 경우 영어는 그다지 못해도 크게 상관은 없음. 물론 세부 전공과 교수 스타일에 따라 다름)

3. 일본인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착각

우리는 종종 일본인들의 영어를 비웃곤 합니다.
일반인들은 영어 못합니다. 우리도 그렇잖아요? 영어 못해도 아무 상관없고요.

그러나 학계에서 보이는 특히 global이나 international 들어가는 전공에서 공부하는 일본인들은 영어 잘합니다.
혹시 귀국자녀 라는 단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네, 어릴 때 미국이나 유럽에서 살다온 애들이죠. 얘네 석박 많이 합니다.
스피킹은 원어민 수준에다 글도 잘 쓰는 애들 와보니 참 많더군요.

그리고 당연히 일본에도 미국에서 학석사 하고 온 일본인 많습니다. 문과 교수들 중에도 미국에서 박사한 사람 엄청 많죠.

또 있어요. 중국인들.
이 분들 영어 잘합니다. 중국인들 일본어도 하고 중국어도 하고..심지어 사립대 다니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부자예요..
장학금에 크게 집착 안합니다.

그리고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또 있습니다. 일본어 수준급으로 하는 서양인들 문과에 엄청 많습니다.
이들은 일단 영어가 모국어라서 석박 하면서 맘만 먹으면 파트타임 조교자리 잘 잡더군요. 모국어가 "영어" 니까요.
jrec 보시면 아시겠지만 영어가 모국어인 강사나 조교수 엄청 많이 구합니다. 연봉도 꽤 괜찮죠.

아이비리그나 미국에서 알아주는 주립대에서 박사하는 문과 미국, 유럽애들 일본 와서 엄청 잘나갑니다.
영어되지, 일본어되지(대체로 일본 문화, 예술, 역사 연구하는 서양애들 오타쿠라고 보시면 됩니다)...뭐 어렵겠나요.
각종 펠로우십, 일본-미국 장학금, 일본-영국 (유럽) 장학금 받고 와서 커리어 잘 쌓습니다.

4. 문과 교수님들

이건 정말 교수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릅니다.
저희 연구실의 경우 지도교수가 취업자리 알아봐 주고 이런거 없습니다.
너 갈 길은 너 알아서 찾아라, 다른 애들도 그렇게 한단다.-> 제가 지도교수에게 커리어 상담 미팅 할 때 들은 얘기입니다.
좋은 점은 딱 하나, 부당한 일 안시킵니다. 이건 미국도 그래요.
물론 교수의 성격 따라 다르지만 저희 연구실의 경우 단 한 번도 석박 학생들+교수와 회식 같은 거 한 적 없습니다.
근데 이건 정말 교수의 성격과 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솔직히 이 부분에 한해서는 저희 연구실의 정책이 마음에 듭니다.
쓸데없는 잡음은 없고 그냥 지 연구만 잘하면 됩니다. 근데 지 연구만 잘하는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죠.
다시 강조하지만 문과는 "글쓰기"가 다예요. 참고로 저는 영어로 논문 씁니다. 영어가 더 편해서요...

5. 학계에 남기

일본 문과 박사 학위....글쎄요. 2000년대 초반 까지는 한국 학계에서 자리 잡았을 수도 있었을거예요.
지금은 상황이 아주 다릅니다.

지금은 미박 하고 오신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하고 계신) 수 많은 분들과 경쟁 해야 하고,
그 다음은 아마도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박사 하신 분들,
그 다음 sky 국박 분들이 있고...아마도 마지막 순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학계에 남는게 불가능은 아닐거예요.
서울대, 동국대, 성균관대도 또 어디더라..하여간 메이져 대학교에 일본 연구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강사나 연구 교수로 남을 확률이 99% (이거라도 되면 다행이죠 솔직히...)

일본 박사 학위로 테뉴어 받기는 이제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일례로 서울대 일본 연구소 연구원님들 (교수님들이죠) 학위보시면.....미국 박사 분들 꽤 되십니다.
특히 나이가 젊으신 (40,50대) 분들은 대부분 서울대 학부에 미국 박사를 받으셨더군요.

다시 강조하자면, 내가 아는 뫄뫄는 도쿄대에서 박사하고 서울 모 대학에서 테뉴어 받았거든요? 이러시면 안됩니다.
0.1%의 예외라는거 나도 알고 여러분도 아시잖아요. 그 분들은 정말 뛰어난 실력이 있거나 미친듯이 운이 좋거나
아니면 둘 다 보유 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죠.

6. 결론

서두에 서술 했지만, 제 전공은 순수 인문학입니다. 네, 인문학 중요하죠. 그런데 정말 중요할까요..
학문의 중요성을 논하자는 게 아닙니다. 모든 학문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기업을 짧지 않은 시간 재직하고, 그만 두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겠다며 이렇게 무모한 짓을 저질렀어요.

미국에서 석사, 그리고 일본에서 순수 인문학으로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인문학은 정말 집에 돈이 많은 사람들만 해야 한다는 겁니다.
돈이 그냥 저냥 있어요 수준이 아니라, 내가 벌지 않아도 집 안이 빵빵해서
내가 욜로해도 전혀 문제 없을 경제수준이신 분들만 박사하세요.

만에 하나 내가 인문학 연구에 너무 뛰어난 소질이 있는데 돈이 없다.
그렇다면 미국을 가십시오. 정말 훌륭한 cv를 가지고 있다면 미국에서 풀펀딩 받고 박사 하시면 됩니다.
농담 아니고 비꼬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미국 가세요.

학비는 당연히 공짜고 혼자서 생활 할 수 있을 정도의 생활비도 줍니다.
물론 엄청난 코스웍과 퀄 시험의 압박이 있긴 한데, 그만큼 가치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학계에로 리턴해도 미국 박사는 1순위입니다.
본인이 학사를 sky에서 했다면 로열로드구요. 물론 운이 따라줘야 하지만 보통 운이 따르더군요.

돈이 없다면 한국에 남거나 일본 "절대로"가지 마시고 1년 정도 gre랑 토플에 투자 하셔서 무조건 미국 가시길 권합니다.
아니면 그냥 인문학 박사를 안하시는거 추천합니다.
정말로 인문학은 말 과거 서양 철학자들이나 지식인들이 그랬듯이 할 거 없어서 술 먹고 담배 피우면서
예술과 문학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 논하는 학문입니다.
애초에 금수저만 하는 학문이예요..저는 멍청하게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무지한 탓이예요.

공대처럼 인더스트리로 빠지기 힘든 순수 인문학 일본 박사, 결론만 말하자면 제 선택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석사 끝나고 미국에 그대로 남았어야 했는데 제 경우엔 미국이 너무 안맞았습니다. 후회합니다.
좀 참을걸...미국에서 그대로 박사 까지 했다면 제가 이렇게 밤잠을 설치지 않았을 것 같네요.

암튼 일본 "인문학 박사"는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선택이고요.
지금은 논문도 거의 다 완성 되었고 (아마 내년 4월쯤 졸업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만 두기도 아깝고 박사는 학위 없는 것 보단 있는게 나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거 졸업은 하려고 합니다.

학계에 남고 싶은데 글쎄요. 일본 문과 박사 졸업장은 일본 외에 써먹을 수 있을까 싶네요 솔직히.
그리고 저는 일본어를 아주 잘하는 편이 아니니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석사학위 받은 학교가 꽤 명문대라서 만에 하나 제가 학계에 자리 잡을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면
제 학부 (ky)와 미국 석사 학위 때문일 것 같네요.

동아시아 연구는 미국이 최고라는 슬픈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시고..gre와 토플을 애써 외면 하지 말고
연구에 소질 있으시면 미국 가세요.아님 차라리 sky 대학원 가십시오.
일본 문과 대학원은 정말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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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3개

IF : 1

2021.12.06

혹시 졸업후 진로는 어떻게 계획하고 계시나요? 제가 인문계열을 잘 몰라서 혹시 그쪽도 보통 박사이후 포닥을 가나요? 그렇다면 미국으로 가실 계획이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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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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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7

지금은 앞이 어두워보이실 수 있겠지만, 위에 분 말씀처럼 나중에는 박사 학위 받기를 잘했다고 느껴지는 날이 분명히 올 것입니다. 끝이 머지 않았으니 조금만 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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