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해외 정착한 지 15년 정도 됐고, 지금은 경영대 조교수로 테뉴어 심사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패키지 제출 끝내고 잠깐 숨 고르기 중이에요. 학교는 나름 잘 알려진 학교.
저는 학부 때는 자연대 출신이고 (수학, 통계 x), 박사만 경영에서 한 케이스라 약간 특이한 루트였어요. 학부 후배들이나 온라인에서 상담을 종종 해왔는데, 많은 분들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앞으로 밥벌이는 어떻게 하지?” 하는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사실 저도 20대 중반에 똑같이 방황했어요. 그러다 “경영학 박사하면 교수 되기 쉽다”는 단순한 이유로 1년 정도 토플, GRE 준비하고 (GMAT은 잘 안 나와서 포기), 경영학 박사 20군데쯤 지원해서 운 좋게 미국에서 한 군데 붙은 게 시작이었죠.
그때까지 경영학 박사들 뭐 뜬그룸 잡는 연구 같은거 하고 영어 잘하고 들어가기 엄청 어려워서 탑 애들만 가는 그런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할만 했어요. 대게 연구가 크게는 심리학 기반 behavioral 연구, 경제학 기반 econ 연구, 그리고 컴퓨터과학/응용수학 기반 테크니컬한 연구로 나눠져요. 비전공자가 접근하기 좋은 건 주로 econ/technical 하는 quant 쪽이에요. 특히 마케팅(quant), 운영관리(OM), MIS 같은 분야는 이공계 배경이 있으면 진입하기 수월합니다. 반대로 Finance는 원래 경쟁이 빡세고, Accounting은 전공 경력자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전략/인사/조직쪽은 공급이 많아서 그런지 마켓이 쉽지 않음.
졸업하고 나면, 시장 상황이 아주 나빴던 몇몇 시기(예: 리먼사테 직후 , 2020년 팬데믹 직후)를 제외하면 대부분 정년트랙(TT) 자리를 잡습니다. 물론 “리서치 스쿨”에 가느냐, “티칭 중심 스쿨”에 가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요. 경영대 특성상 전공별로 뽑는 인원이 워낙 적습니다. 많아야 한 해에 2~3명 뽑는 정도라, 연구 랭킹 기준 Top 100 안에서 졸업만 해도 기본적인 밥벌이는 충분히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만약 운이 안 따라 티칭 중심 학교로 가게 되더라도, 현재 미국 마켓 기준으로 연봉이 대략 13만 불 정도는 됩니다 (유럽은... 적습니다). 이쪽은 보통 한 학기에 3개 섹션을 맡는데, 보통은 2과목을 1+2반 식으로 가르치고, 가끔 운 나쁘면 3과목을 맡을 때도 있습니다. 대신 정년 기준이 굉장히 낮아서, 논문을 몇 편만 채우면 안정적으로 테뉴어를 받을 수 있어요. 여름 방학 동안 자동으로 주는 연구 지원금(summer support)은 없지만, 원하면 여름 강의나 부업으로 보충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워라벨이 좋은 쪽이에요.
반대로 운이 좋아 리서치 스쿨에 가면, 요즘 미국/홍콩/싱가폴 등 기준으로 연봉이 17만~22만 불 정도 됩니다. 여기에 보통 2개월치 급여에 해당하는 summer support가 붙는데, 그럼 3만5천~5만 불 정도가 추가돼서 연봉이 뭐 아주 높진 않지만 꽤 넉넉한 수준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티칭압박은 한학기에 1-2반 정도 가르치는데 보통 1-2과목만 가르칩니다. 저는 가을에 3반 (1과목) 몰아서 가르치거나 가을-봄에 1-2 이런식으로 나눠서 하거나 했어요.
다만 여기서는 연구 압박이 심합니다. 카운트 해주는 탑저널은 accept rate가 1%도 안 되고, 테뉴어를 지원하려면 그 중 최소 3~6편 정도를 찍어야 자격이 되니까요. 대신 리서치 스쿨에서 경력을 쌓으면 다른 학교로 옮기는 것도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학계가 맞지 않으면 컨설팅 회사나 테크 기업으로 옮기는 경우도 제법 있습니다. 실제로 제 주변에서도 그렇게 전향한 동료들을 꽤 봤습니다.
저는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운 좋게 상위권 학교에서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지방대 출신이라 더 힘들게 살았을 것 같은데, 여기선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공부하는 게 크게 싫지 않고, 안정적이고 괜찮은 삶을 원한다면 경영학 박사라는 선택지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하다”라고 얘기합니다.
연구 경력이 꼭 있어야 하냐는 질문도 자주 받는데, quant 쪽은 백그라운드만 탄탄하면 꼭 연구 경험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어요. 저도 PhD 서치 커미티 많이 해봤고 학생 몇명도 키워서 TT 조교수 만들어 봤지만 quant쪽은 백그라운드만 있으면 와서 가르킨다는 저같은 사람도 있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학회 발표 경험 같은 게 있으면 플러스지만 필수는 아닙니다. 코스웍은 경제학 쪽 기초가 부족하면 좀 힘들 수 있는데, 이공계 수학 배경 있으면 크게 문제는 안 돼요. 영어가 부담스럽다면 미리 발표 스크립트 준비하고 요즘은 GenAI도 있으니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뭘 좋아하지?”라는 질문에 꼭 답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저도 몰랐고, 여전히 많은 분들이 모르지만, 이 길이 주는 안정성과 기회가 분명히 있습니다. 공부하는 게 크게 싫지 않고, 안정적인 커리어를 원한다면 한 번쯤은 고려해볼 만한 루트라고 생각해요.
카카오 계정과 연동하여 게시글에 달린 댓글 알람, 소식등을 빠르게 받아보세요
댓글 4개
춤추는 알렉산더 벨*
2025.09.29
경영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경영술로 이름을 바꿔야 함. 남의 주머니에서 돈 빼낼 궁리만 하는 이익집단인데 이게 어떻게 학문임. 공익에 기여해야 진정한 학문임.
아니 어지간한 경영대 박사 과정 들어가는 건 이공계 탑스쿨 박사 가는 것보다 난이도가 높지 않나요?
그렇게 어려운 걸 너무 쉽게 말씀하시면 후배들이 헷갈립니다.
나름 전미 CS 탑 10-20 권 주립대에서 학위하는 동안 CS 한국 대학원생은 25-30명 쯤 만났는데 경영대에서 파이낸스 포함 박사 대학원생은 딱 한명 만났습니다. 당연히 졸업하고 바로 R1 교수 임용되시더군요.
경영대 교수 샐러리가 많이 높은 거야 주지의 사실이고요.
2026.09.23
아주 좋은 글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산업공학 박사했지만, 미국에 와서 경영대의 위상을 처음 알았습니다. 경영대 박사 입학 난이도도 매우 어렵고, 또 졸업하고 아카데미아에 남을 때는 타전공과 비교 안 되는 급여를 주니까 말입니다. 다만, 경영대 elite journal 싸움은 매우 피말리는 거 같습니다. 사실 "탑티어"라는 말을 요새는 여기저기서 많이 쓰는데요. 일반적인 engineering 에서 말하는 "탑저널"과 CS/AI 에서 말하는 "탑티어" 컨퍼런스와 비교해볼 때, elite journal 의 난이도와 selectivity 는 타전공의 탑티어 저널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 같습니다.
경영대 elite journal 은 난이도가 극악이고 임용 시장에서는 job market paper 라고 해서 R&R 이 일반적인데 비해, engineering 및 CS/AI 에서는 분야에 따라서, 석사 때 이미 1-2편 가지고 있고, 박사 때는 이미 4-5편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죠. 요새는 CS/AI 의 탑티어 컨퍼런스는 너무 많아져서 하나 하나의 밸류가 엄청 떨어졌구요.
경영대에 도전하려면 경영대의 문화, 소수정예, elite journal game, 높은 급여 등을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영대 문화 속에서 잘 훈련 받아서 elite journal 을 쓰는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engineering Ph.D.로 경영대로 가려면 노력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2025.09.29
대댓글 1개
2025.09.30
202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