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부려보는 허세. 직장 상사의 스트레스, 간헐적인 회식, 현재 받는 월급을 보며 집은 언제 사고, 결혼은 언제 하는지 등을 고민하는 직장인 친구들이 보기에, 내 일과는 안쓰럽게 보이는가 보다.
저마다 반응은 다르지만, 주변 사람 중 나처럼 가방끈을 늘리는 사람은 없다는 식의 말투와 진심으로 보내는 안타까움은 내가 그들과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침대에서 일어나면 시간은 이미 오후 1시를 지나있다. 규칙적인 삶은 팽개친 채로 적당히 포만감을 채운 후 학교에 올라가면, 아침마다 무심하게 유튜브를 보듯이 실험실을 가볍게 훑어보고 연구실로 들어간다.
'토요일에는 밀린 과제하고 일요일에는 논문 읽고 데이터 정리좀 해야겠다.'
참고로 오늘 일요일이다. 토요일에는 밥 한끼만 먹고 10시간 이상을 유튜브만 봤다.
주말 계획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건 몇달 전인가. 그저 '대학원생은 주말에도 출근한다.'는 문장에 스스로를 옭아매 무지성으로 연구실만 들낙거린게 몇달 째인가.
잠시 정신이 번쩍 들며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해보자'는 다짐을 가진다. 하지만, 최근 손흥민 선수의 평판이 어떤지, 쇼미더머니10의 준결승 곡은 어땠는지 등의 내용은 참을 수가 없어 웹 서핑을 하는게 오늘 첫 업무가 돼버렸다.
그렇게 넋놓고 폰을 만진지 언 한 시간, 갑자기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행님. 어디십니까."
"학교지 ㅋㅋ"
"와 ㅋㅋ 저 오랜만에 학교 왔는데 잠시 볼 수 있어요?"
"당연하지 ㅋㅋ 어딘데 지금 바로 나갈게"
첫 일과를 마친 후 직장인 후배를 만나 커피 한 잔을 얻어먹고 다시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진짜 이거만 보고 일 해야겠다."
제대로 된 실적 하나 없는 주제에 내 전공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어딘지 찾아보고 싶어 김박사넷과 하이브레인넷의 채용공고를 또 훑어본다. 근 3개월 간 10번은 넘게 봤는데도 말이다. 웹 서핑, 후배 만나고 오기에 이은 세 번째 업무. 주말에 학교와서 참으로 다양한 일을 한다.
'???대학 전임교원 모집'
'??연구원 정규직 상시 모집'
"여기 가고 싶은데 진짜 포닥 때는 다른 연구도 좀 해봐야겠다."
당장 오늘 일과만 봐도 연구실 와서 놀고 자빠진게 전부면서 김치국은 이미 한강이다. 포닥갈 실력은 되는가? 아니 애초에 지금 하고 있는 연구에서 제대로된 결과나 실적은 냈는가?
하지만 이런 자학도 잠시 뿐이다. 금새 나는 이길로 이런 연구를 해서 그토록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다고 정신승리를 또 한다.
채용공고만 보다가 커뮤니티에는 어떤 글들이 올라오는지 궁금해 이것저것 읽어본다. 누구는 진학과 진로에 대한 고민을, 누군가는 랩실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어떤 교수님은 시리즈물 연재로 인기글을 채우고 계셨다.
열정을 태우거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원생들의 글을 보면 많은 공감을 느끼며, 다시 욕심이 생긴다. 그리고,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이제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원래 하려고 했던 '진짜 첫 업무'를 할 생각이다.
마감일이 내일 모레까지니 조금은 여유를 부릴 것 같아 걱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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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2021.11.28
ㅋㅋ..
2021.11.29
뭐지 난 글 안 썼는데 왜 내 얘기 올라와있지
2021.11.29
개인적으로 박사 말년 돼서 드는 생각인데, 실험하는 사람이거나 마감기한 아슬아슬한 거 아니면 주말에 연구실 가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음.
1. 평일에도 본문 내용처럼 유유자적 보냈기 때문에 죄책감 혹은 보상 심리로 주말에도 나온다.
2021.11.28
2021.11.29
2021.11.29
대댓글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