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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수가 보는 학부 학벌의 가치

찌질한 앨런 튜링

2021.11.08 36 10539

며칠 전에 우연히 김박사넷에 커뮤니티가 생긴 것을 알고 가입해서 이제 게시판을 보기 시작한
현직 교수입니다. 그런데 최근 글들은 학부 학벌에 대한 글이 많네요.

학벌 이야기는 20여년전 제가 학부였을 때도 말이 많았는데 지금도 변함 없이 인기 많은 주제이네요. 아마도 그 이유는 첫째가 좋은 학부 혹은 상위권 학부를 나온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 일테고 두번째, 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학부와 상관 없이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 하기 때문일테고 셋째로, 많은 사람들이 학부 출신으로 인해 현재 자신의 가치가 평가 절하 혹은 절상 된다는게 부당하다고 생각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또한 학부에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으로 그동안 학계와 산업계를 보면서 느껴온 바를 나눠 볼까 합니다. 짧게 결론만 말하자면 어떤 자리에서는 중요하고 어떤 자리에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자리에서도 신경은 쓰인다. 이 정도로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국내와 국외에서의 경우로 나눠서 얘기 해야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서 먼저 국내의 경우를 얘기하고 그 후에 국외에서의 경우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저는 서울의 중하위권 혹은 하위권 (동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대학 출신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나와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고 경력은 한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전공은 컴싸에 인공지능이 세부전공이지만 이 이야기는 일반적인 컴퓨터 분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논문만 잘 쓰면 최고다. 탑 저널에 논문 몇편 내면 학부는 상관 없다. 논물 실적이 학부건 대학원이건 다 씹어 먹을 수 있다. 이런 종류의 말들을 합니다. 제가 겪어 본 바 이건 솔직히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정확히는 1/3만 맞다고 보입니다. 논문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대학이나 연구소를 염두에 말하는 것일테고 그 중에서도 대학을, 교수직을 원하는 것이겠죠. 일반적으로 학교는 논문을 많이 뽑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학교의 순위 측정에 논문 편수가 중요하니 논문 잘 뽑아 내는 교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학부가 안 좋고 박사 학교가 안 좋아도 뽑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 제 모교에 이런 교수님이 계시죠. 그런데 동료 교수님들의 시선이 안 좋습니다. 한 모교 교수님이 저한테 그러시더군요. 아무리 학교에서는 논문 편수가 중요하다지만 우리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요. 비단 한 교수님만의 시선일 수 있지만 전 다른 교수님들도 그렇게 보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논문 편수가 많다고 다 뽑히는 것도 아닙니다. 건너 아는 분이 엄청나게 SCI 논문을 졸업 전에 뽑아 냈는데 너무 엄청나서 주변 학교에까지 다 알려질 정도였죠. 하지만 결국 국내 임용이 안 되서 유럽으로 가셨습니다. 유럽 가기 전 얘기를 해 보니 총장 면접까지 갔던 서울 소재 학교가 두군데 있었는데 자신의 역량을 못 믿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과연 지도 교수 없이도 이렇게 뽑아 냈을 수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 오히려 그 분은 너무 많은 논문 편수가 더 독이 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말 엄청 났거든요.

둘째, 그러면 논문 편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논문의 질이 중요한게 아니냐 하고 생각 할 수 있는데 이것 또한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먼저 반이 틀린 이유는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논문의 양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이 맞는 이유는 논문의 질에 따라 좋은 네트워크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아는 분이 나름 좋은 연구를 꾸준히 해 오셨는데 몇년 전에 괜찮은 대학 교수로 임용 되었습니다.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니 외국에서 열렸던 학회에서 특정 대학교의 교수님들을 만났는데 그 교수님들이 이 지인의 연구를 맘에 들어 하셨고 그 학교에 지원을 권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 분의 스펙에 맞춰서 채용 공고를 냈습니다. 채용 프로세스에도 에피소드가 있지만 결론만 말하면 잘 채용 됐고 지금은 정교수가 되셨지요. 자신의 연구가 좋으면 그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 외에도 몇가지 얘기가 더 있는데, 특히 학부의 중요성에 대한, 글이 너무 길어졌네요. 그냥 꼰대의 개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제 대학원을 생각하는 학벌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젊은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중에 이어서 써보겠습니다.

댓글 36

  • 바보같은 마르셀 프루스트

    2021.11.08

    좀만 더 써주시지..ㅋㅋ 똥싸다 끊긴느낌. 좋은글 감사합니다 교수님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조만간 이어서 쓰겠습니다. 퇴고 없이 그냥 쓰는 글이라 길이 너무 길어지네요 ㅎㅎ

  • 건강한 데이비드 흄 (탈퇴한 회원입니다)

    2021.11.08

    누적 신고가 50개 이상인 사용자입니다.

    학부/대학원 학벌 특히 학부 학벌이 낮다는 건 판단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대부분의 경우 '머리가 나쁘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머리 나쁜 사람이 어쩌다가 좋은 실적을 내봤자 항상성이 있다고 생각 안하는 거 같습니다.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공부를 안 해서 왔는지 공부를 못 해서 왔는지 알기가 힘들죠.. 공부를 안 했던 사람이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 잘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 용감한 임마누엘 칸트

    2021.11.08

    현직 교수입니다. 중간 내용 중에 "아무리 학교에서는 논문 편수가 중요하다지만 우리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요." <------------- 이거 진짜 놀랍네요. 저희 학과 선배 교수님도 똑같은 말 하셨습니다. 생각하는게 다 비슷비슷한가 보네요.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그래서 저는 제 학부보다 높은 곳에서 교수 지원 추천을 받았는데 사양 했습니다. 기존 교수님들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옹졸한 쇠렌 키르케고르

    2021.11.08

    누적 신고가 20개 이상인 사용자입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교수되기 쉬운 대신 대접은 한국만큼 못 받는다는 말이 많은데 이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음...미국 자체가 학부중심 사회라 학부에 따라 연봉도 다르고, 학/석/박 연봉 차이가 별로없어 학부졸 취업이 대부분이고, 대학원은 로스쿨, 의치학전문, 교수희망자 외는 없다고 함. 명문, 비명문을 망라해서 마찬가지고 석,박사 티오는 외국 유학생들이 차지하고 자국에 비해 디메리트(향수병, 인종차별, 주류계 진입벽, 생활환경)을 감수 하고서라도 취업을 위한 유학이 많아지고 있다고 현지 유학생이나 현직에 있는 사람들로 부터 듣고 있음.

    대댓글 5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대접은 당연 한국이 나음.

    • 옹졸한 쇠렌 키르케고르

      2021.11.08

      누적 신고가 20개 이상인 사용자입니다.

      현지 사람들 말로는 한국 돌아가 교수나 다른꿈이 있어 포닥이라면 모를까 목표가 현지 취업 같으면 다시 생각하는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음(사람마다 다르긴 할 것 임)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게 이건 가치관 문제임. 예를 들어, 일을 70때까지 하고 싶은 사람은 정년 퇴직이 없는 미국이 나음. 한국 문화나 한국 시스탬을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한국이 나음. 애들 교육에 관해서도 가치관이 다르니 어떤 사람은 한국이 좋고 어떤 사람은 미국이 좋음.

    • 배고픈 마키아벨리

      2021.11.08

      ㄴ저도 동의함. 100세 시대에 65세까지 밖에 일 못하는 한국 교수에 비해, 미국에는 정년이 없어서 80 넘어도 현역으로 일하는 교수들 많음.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하고 싶다면 미국 교수가 나음.

    • 상처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2021.11.09

      누적신고 20개. 우선 본 글과 전혀 상관없는 글이고, 디메리트나 메리트나 결국 사바사인 것을 알면서 굳이 왜 이런 댓글을 달음? 현직 유학생이나 현직에 사람 아는 사람 많다 했으면서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거 맞음??

  • 도도한 게오르크 헤겔

    2021.11.08

    감사합니다 교수님 2편도 기다릴게요!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넵 곧 이어서 쓰겠습니다.

  • 옹졸한 쇠렌 키르케고르

    2021.11.08

    누적 신고가 20개 이상인 사용자입니다.

    취업 유학을 가더라도 미국사회에 대한 현실을 잘 알고 가야, 가서 방황하지 않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올 확률이 적어짐..집에 형편 된다고 박사과정으로 간 사람들 절반가량 중도 귀국 임, 학사도 미국은 5년은 잡아야 졸업하기 때문에 기본 5억은 잡고 유학가야 되고, 석사도 자비라 2년 기본 2억 마찬가지 임(학교 측에서 보면 할 사람 별로 없어 석사학위 장사나 마찬가지 임) 박사는 조교일에 대한 댓가니 돈은 그리 안듬...미국이라는 나라가 계산적이라 생각만큼 우호적이거나 만만한 곳 아님

    대댓글 5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나중에 시간 되면 여기에 대해서도 글을 쓸 예정. 개인적 생각으로는 집에 여유가 있음 차라리 한국에 있는게 나음. 지금까지는 유학 나올 돈으로 아파트라도 사 두면 그거는 몇년 뒤 몇배가 됐음.

    • 옹졸한 쇠렌 키르케고르

      2021.11.08

      누적 신고가 20개 이상인 사용자입니다.

      교수님이 현실감 있게 후속타를 쓸 예정이시라니 이것만,,,,박사과정도 교수 마음에 안들면 중도에서 펀딩 끊김 (조교일 안줌) 그러면 집에서 돈 가지다가 쓰야 됨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아는 후배는 박사내내 자비로 했음. 은근히 이런 한국 학생들이 적지 않음. 근데 이 동생도 결국 한국서 교수 됨. 이걸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 해야하는지 애매함 왜냐하면 자비로 몇년이나 하다가 그만 둔 경우도 많이 있음. 그럼 결국 석사 학위 받고 나가거나 그것도 없을 수 있음.

    • 소심한 쇠렌 키르케고르

      2021.11.08

      자비로 공부해서 한국에서 교수로 갓으면은 이게 참 가성비가......
      집안 기둥은 물론이고 주춧돌도 다 뽑혓을건데.
      아주 부자집이면 이야기가 다르긴 하다만

    • 배고픈 마키아벨리

      2021.11.08

      그럼 국내 대학원 가는 사람들은 돈 없는 사람들임?

  • 소심한 쇠렌 키르케고르

    2021.11.08

    논문이 너무 많아도 독
    논문 양은 적지만 고오급 저널지에 질만 챙겨도 독
    좋지 않은 학부 나와서 그럭저럭 괜찮은 곳에서 Ph.D 하고 논문 잘 써도 뒤에서 씹고

    참 교수 사회는 7년전 석사 들어갈때나 지금이나 쓸대없이 피곤한 곳이네요.

    미국도 한국처럼 교수가 사업한다고 강의고 원생이고 랩실이고 전부 내팽계쳐도 학교에서 그려려니 하고 방기하는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하네요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글쎄요. 미국이라고 다 좋은 교수만 있는거는 아니지만 한국도 나쁜 교수만 있는건 아니니까요.. 다만 미국은 좀 법이 쎄서 학교로 들어온 돈(국책 연구)이 교수 회사로 나간다면 FBI 관할이 되더군요, 연방 정부 예산이라..

  • 춤추는 버지니아 울프

    2021.11.08

    교수님 좋은 대학원생 나쁜 대학원생도 써주세요

    대댓글 3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어려운 주제네요. 교수 입장인가요? 학생입장인가요?

    • 쑥스러운 플라톤

      2021.11.09

      교수님 입장이지 않을까요??
      교수님 시선이 궁금합니다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10

      교수 입장에서는 아이디어 좋고 논문 잘 쓰고 박사 오래 하는 학생이 좋은 대학원생입니다. 미국 교수도 사바사지만 어서 박사 졸업하고 다른 곳에서 교수하며 네 꿈을 펼치렴 하는 교수도 있지만 내 밑에서 싸게 오랫동안 부려먹겠다 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그 학생이 일을 잘하면 더욱 더 오래 붙들고 싶죠. 일찍 박사 받고 나갔다 해서 꼭 교수가 사랑하고 아끼는 건 아닙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나중에 미국 대학원 생활로 글 써볼께요.

  • 사려깊은 그레고어 멘델

    2021.11.08

    교수님은 학부생으로 바로 기업 입사 하지 않고 박사까지 하고 교수되셨는데 후회되신적 없으신가여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대학원 가기 전 회사 경험이 있습니다. 교수직 구할 때 회사 연구소 다 오퍼 받았는데 교수가 주는 자유도가 좋아서 선택 했습니다. 지금은.. 회사가 돈을 너무 많이 줘서.. 실리콘밸리에 있는 후배들 보니 제 연봉 4배 벌더군요.

  • 공허한 빌헬름 뢴트겐

    2021.11.08

    교수님이 입학 상담회 열거나 학과 공지 게시판에 글 남기듯이 말씀하시니까 학생들도 본인 학과 교수님 대하듯이 댓글 다는 게 재밌네요 ㅋㅋ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8

      다행입니다 ㅎㅎ

  • 속편한 피터 힉스

    2021.11.09

    문돌이 출신으로 컴공 관렴 대학원 진학 예정입니다(현재 합격은 한 상태입니다) 우연히 글을 보게되었는데 사실 이런 주제에서 컴공과 완전히 다른 타과(흔히들 이야기하는 문사철, 경영, 사회과학쪽 전공)은 아예 논외인 것 같더라고요.

    이러한 학부 출신의 석사 혹은 박사생에 대한 학계나 산업계의 시선은 어떠한가요... 물론 사람에따라 논문 실적과 실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반적인 시선이 궁금합니다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09

      제가 보기에 컴싸나 이쪽 관련은 점점 포괄적이고 융학적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어 처리쪽 하는 교수님들중에 언어학과랑 컴싸에 같이 적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 교수님들중서도 컴싸에 같이 적을 두는 교수님들도 많이 계시죠. 그러니 타 학부 출신이라 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상처받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2021.11.09

    재밌어요. 이 글 보려고 가입했어요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10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한글로 이렇게 긴 글을 쓰는데 엄청 피곤하네요.

  • 공허한 피터 힉스

    2021.11.10

    정말 많은 가능성이 있네요. 확실히 경우의 수를 한 가지만 보고 맞다 틀리다 하는 게 아니라 많은 경험과 관측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수님과 학생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지...

    대댓글 1개

    • 찌질한 앨런 튜링 (작성자)

      2021.11.10

      다들 알 수도 있지만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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