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에 썼으니까 가정의 달 특집입니다.
우리 엄마는 그 시에서 알아주는 모범생이었다. 중학교 입학 때부터 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엄마는 스무 살 되던 해 상경해 대학에 진학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우수한 성적 덕분에 장학금도 탈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석사과정과 일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직으로 일자리를 옮겼고, 이후 아빠를 만나 결혼을 결심했다. 아빠가 처음 외할머니를 뵈었을 때, 결혼 허락 조건이 '딸이 끝까지 원하는 공부 할 수 있게끔 지원할 것'이었다. 그만큼 엄마의 공부에 대한 열의가 컸고, 당신 딸에 대한 외할머니의 기대와 바람도 거기에 부합했다.
결혼 후 엄마의 꿈은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와 동생이 연달아 태어났다. 갓난아이들을 길러내는 건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육아와 모든 사회생활이 그러하듯 일상을 살아나기가 넘치도록 벅찼다.
아이들이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엄마는 더 늦어지기 전에 박사 진학을 결심했다. 그전에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거니와, 연구를 업으로 하면서 가졌을 학업에 대한 목마름이 컸으리라. 그렇게 엄마는 다시 학교와 직장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아빠도 장모와의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빠의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주 52시간은커녕 주 5일제도 아주 먼 미래의 소설 같은 이야기였던 그 시절, 내가 집에서 눈을 뜨고 있었을 그 시간들에 아빠는 항상 회사에서 경제활동의 최전선에 있었다.
엄마는 집에서 연구를 많이 했다. 집에는 항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