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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지원서 수백개를 받아보며 느낀 점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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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젊은 조교수이지만,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대학에 재직하고 있고 최근 주목받는 분야에서 연구하다 보니, 지난 1년 동안 600개가 넘는 대학원 지원서를 받은 것 같습니다. 아마 저보다 더 유명한 대학이나 연구실에 계신 교수님들은 훨씬 많은 지원서를 받으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지원서를 검토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경쟁력을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학생들이 눈에 띄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니어 교수님들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 자신만의 선발 기준과 노하우가 있으실 테고, 저보다 훨씬 정확하고 빠르게 학생들의 잠재력을 판단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 막 연구실을 꾸려가는 신임 교수의 입장에서, 지난 1년간 지원서를 검토하고 학생들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들을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1. 교수는 생각보다 훨씬 적은 수의 지원서를 자세히 읽습니다.
수백 개의 지원서가 들어오지만, 그중 CV를 조금 더 자세히 읽어볼 만하다고 느끼는 지원서는 대략 150개 정도입니다. 현실적으로 비자 발급 가능성과 소요 기간, 제출 서류의 신뢰성 등 여러 문제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추린 CV를 읽고 나서 Research Statement까지 확인하고 싶어지는 지원자는 다시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출신 대학의 수준, GPA, 연구 경험, 논문 실적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봅니다. 출신 국가나 대학마다 교육 환경과 평가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저는 국가별 대학 수준과 성적 분포도 어느 정도 고려하는 편입니다.
물론 좋은 대학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대학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불리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눈에 띄는 연구 실적이나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학교와 관계없이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됩니다.

2. 이메일을 보낼 때 중요한 점
첫째, 생각보다 Research Statement를 보내지 않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물론 CV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CV만 첨부된 이메일을 받으면 여러 교수님께 동일한 메일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본인이 어떤 연구를 해왔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며, 왜 해당 연구실에 관심이 있는지를 간단하게라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AI로 대충 작성한 이메일은 생각보다 쉽게 눈에 띕니다. 요즘 가장 흔하게 보이는 패턴이 있습니다. "교수님의 A 논문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학생의 CV나 연구 경험을 살펴보면 A 논문과 전혀 관련이 없거나, 논문의 핵심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관심 분야와 전혀 다른 논문인데도 감명받았다고 적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ChatGPT를 활용해 영어를 다듬거나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AI를 많이 활용합니다.
다만 AI가 대신 만들어준 관심과 동기는 실제 인터뷰에서 금방 드러납니다.

셋째, 연구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충분히 눈에 띌 수 있습니다. 특히 학부를 갓 졸업한 학생들은 연구 경험이 부족하거나, 지원하는 연구실과 정확히 일치하는 분야의 경험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학생들은 그 부족함을 스스로 인지하면서도, 자신이 해온 경험을 새로운 연구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혹은 특정 연구 분야에 관심이 생겨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거나, 관련 논문을 읽고 스스로 정리해 보았다는 식으로 관심을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이런 부분을 상당히 Green Flag로 봅니다.
연구 경험이 부족한 것 자체보다, 그 부족함을 어떻게 채우려 했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3. 인터뷰에서 느낀 점
서류를 통과한 학생들과는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여기에서도 생각보다 차이가 크게 드러납니다.
첫째, 의외로 발표 자료를 준비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특히 학부 졸업생 중에는 본인이 보여줄 만한 연구 성과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PPT를 준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발표 자료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특별히 요청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의 프로젝트나 연구 경험을 짧게 정리해서 보여주는 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받습니다. 대단한 논문이나 성과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잘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별화될 수 있습니다.

둘째, 왜 하필 이 연구실에 오고 싶은지 명확하게 대답하는 학생이 매우 적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저는 OO 분야를 연구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저는 종종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 분야는 본국에도 훌륭한 교수님들이 계시고, 유럽이나 미국의 다른 연구실에서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는데, 왜 굳이 제 연구실에 오고 싶은가요?"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다는 것과, 그 분야를 연구하는 수많은 연구실 중에서 왜 특정 교수의 연구실을 선택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셋째, 연구실에 대해 충분히 조사한 학생들은 인터뷰에서 티가 납니다.
교수의 논문을 몇 편 읽어봤는지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연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본인의 경험과 어떤 연결점이 있는지, 앞으로 어떤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싶은지를 설명할 수 있는 학생들은 확실히 눈에 띕니다. 특히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질문하는 학생들은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리석은 답이여도 저는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사실 학생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수많은 연구실을 하나하나 조사하고, 교수마다 맞춤형 이메일을 작성하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게다가 저 역시 모든 이메일에 답장하지 못하고, 상당수는 읽고도 답장을 드리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이 AI를 활용해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정말 가고 싶은 연구실이 있다면, 적어도 그 연구실에 대해서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알아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최근에는 어떤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본인의 경험이 그 연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지원자는 좋은 학부 성적과 관련 연구 경험을 갖추고, 연구에 대한 동기부여까지 확실한 학생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조건을 모두 갖춘 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저 역시 여러 차례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유가 단순히 좋은 대학을 나온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훌륭한 연구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원석 같은 학생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5. 출신 대학이 얼마나 중요한가?
저도 지원자의 출신 대학을 잘 모르는 경우에는 해당 국가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대학인지 찾아봅니다. 하지만 반드시 제가 들어본 대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학교마다 교육 수준과 평가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되, 학교 이름만으로 학생의 능력을 판단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학부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연구 실적이 뛰어난 학생이라면 저는 거의 반드시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또한 제가 연구 역량과 지도 방식을 신뢰하는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경험을 쌓은 학생이라면 그 역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결국 학부는 이미 졸업했다면 바꿀 수 없는 이력입니다. 좋은 학부 출신이라면 그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면 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대학 출신이라면 연구 실적과 프로젝트 경험, 추천서, 명확한 연구 동기 등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학생들에 대해서도 한 가지 말씀드리면, 제가 경험하거나 주변 교수님들께 들은 사례에서는 성실함과 꾸준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물론 국적만으로 학생의 역량이나 성향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에서 쌓은 교육과 연구 경험을 자신 있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은 해외 대학원 진학뿐 아니라 한국에서 교수님들께 컨택할 때에도 상당 부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수마다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르고, 제가 공유한 내용도 어디까지나 이제 막 연구실을 꾸려가는 신임 교수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온 학생보다 더 눈에 띄는 사람은, 자신이 왜 이 연구를 하고 싶은지 알고 그것을 말이 아닌 경험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학생입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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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개

2026.10.30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26.10.30

글을 읽어보니, 국내가 아니라 해외 대학에 재직하고 계신가보네요? ㅎㅎ

대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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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0.30

수백명의 지원자들 중 아무나 막 던진 사람과 진심으로 관심있는 사람들을 추려내는 교수님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학부생들에게 너무 가혹해 보이다가도 현실이 그러하다는 건 어쩔수가 없죠. 교수님이라는 직책으로서의 책임감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이 글을 통해 다시한번 새겨듣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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