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문]석사 이후 학계를 떠나기로 하며...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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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석사 재학 중만 해도 졸업이 올까 했는데, 시간 참 빠릅니다. 석사 졸업을 말미암아 제 석사 생활을 돌아보고, 혹시라도 대학원 생활이 궁금한 학부생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저는 인서울 대학원에 다니며, 휴학 한 번도 없이 대학교를 다니다가, 마지막 학기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에서 잠시 일한 후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상대적으로 늦게 결정하다보니 학부연구생 경험은 없었으나, 가족 중 석사 이상이신 분들이 있어 대학원 생활에 대해 얼추 파악하고 각오하고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기에 교수님들과 컨택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저에게 가장 먼저 대학원을 제안하신 대가랩으로 가려고 했으나, 해당 연구실은 정원이 차서 해당 연구실과 비슷한 신생랩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원 입학하기 전부터 있던 연구실이었으나, 실질적으론 제가 입학할 즈음에 자리잡기 시작하였습니다.

연구실의 시작은 저랑, 제 석사 동기분, 다수의 파트타임 선생님이었습니다. 즉, 풀타임 학생은 석사 두 명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둘 다 모르는 것이 많았고, 선배가 없었기에 혼란스러운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 교수님께서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시기 보다는 알아서 찾아보라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혼란은 더 가중될 따름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교수님께서 정교수가 되기위해 계속 성과를 내야 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석사생들이 성과압박을 많이 받으니 정말 벅차더군요...다행히 이후에 석사생들이 많이 들어왔지만, 그래도 항상 야근하고, 어쩔때는 2~3일 정도 집에 못들어가고...석사생들끼리 참 고군분투 했습니다.

그렇게 단기간에 성과를 다양하게 달성하려다보니 한 분야를 깊게 하기보다는 여러 분야를 얇게 파게 되었고, 이도 저도 아니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점이 참 괴리감이 느껴집니다. 아무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석사생을 가지고 성과를 달성하려다보니 제 주도적인 논문보다는 교수님께서 시켜서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연구과제 성과용이다보니 때로는 전혀 생뚱맞은 연구들을 연결시켜 논문을 작성하라고 했습니다.(다행히 국제 저널에 등재는 되었지만, 교수님께서도 해결책을 잘 모르는 것을 석사 1학기에 시키셔서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대학원생도 그럴텐데 일적으로만 힘든게 아니라 인간관계도 참...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교수님 성향이 내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부분이더라도 마음에 안들면 그 점을 고칠때까지 결과물을 봐주지 않아 결과물을 제출할때마다 거슬리는 부분이 있을까 계속 눈치를 봐야했습니다. 이 때문에 시간도 많이 지체되어서 최후에 최후까지 미뤄지는 것은 일쑤였습니다.(이 점에 대해선 저희 학생들 모두 피말린다 하더군요...ㅋ) 그리고 저희 연구실은 동료간 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나 팀플레이는 다른 연구실에 비해 가장 덜하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더군다나 사내커플의 탄생으로 이 면이 더 심해졌습니다. 그렇게 이쪽 저쪽 눈치보다보니 기가 빨리고, 가족들도 제가 힘든 것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다보니 거의 막바지에는 주말에 아무것도 안하고 방에서 무기력하게 있을 뿐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군중 속의 고독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주위에 사람은 많은데 외로운 그런...

이건 대학원생 모두의 고질적인 문제인데, 건강도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모르나, 5명도 안되는 석사생들이 연구과제 총 6개를 운영하려다 보니 다들 여유가 없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도 제 자신을 돌볼 여유가 없고, 스트레스를 폭식으로 살은 10kg 찌고, 고혈압까지 얻게 되었습니다.(스트레스하니까 생각났는데, 사람이 극한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들릴수 있다는 것을 대학원와서 처음 느끼게 되었습니다...)당연히 제 외적인 면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석사 2학기차에 게으르고 자기관리 못하니 살찐다는 얘기를 끝으로 보기좋게 차였습니다.(슬프게도 이로 인해 연애 공포증이 생겼습니다;;다들 학업과 연애 병행 어떻게 하시는지...) 졸업 이후로는 일을 다니며 주 4~5회 운동할 계획입니다.

저희 학과는 관련 사기업이 많이 없어서 석사에서만 멈추는 것이 많이 고민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이면 교수님의 보호하에 있기 때문에 사회로 나가서 혼자 고군분투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솔직히 두렵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학원을 다니는 2년간 연구와 학업에 대한 열정을 많이 잃어버려 박사를 진학한다면 정말 이도저도 아닐 것 같아 교수님께 단호하게 박사진학을 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언젠가 박사 진학하겠지라고 믿으시는거 같은데, 저는 추호도 박사 진학할 의향이 없습니다. 그것도 풀타임으로는요. 어떤 선배님도 박사 진학 안하시려다 막학기에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박사진학 결심하셨다는데, 저는 처음 잠깐 즐겁고 그 이후는 계속 할만하지 않았습니다.

학부때만해도 저희 학과, 저희 학문에 열정이 많았고,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공부할 정도로 전공 공부가 재밌었는데, 2년만에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제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긴 합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에 후회는 없는 것이 학생과 사회인의 중간 그 어딘가의 신분에서 사회에서 행동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위기 대처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연락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본격적으로 사회 나가기 전 여러모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정말 사소하게 몇 개는 Office 제품군과 한글 문서 사용 스킬이 증가한 것, 정신적으로 나름 성숙해진 것, 잔머리 굴리는 법 등등...이런 점도 얻어갔습니다. 뭐...그리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 많고, 그렇기에 아직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하지만 석사 지내는 동안 죽을 생각도 몇번해서 유서도 많이 썼지만요 허허)

무엇보다 제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른바 부모님 말 잘듣는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 자체에 대해서 크게 불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원 다니는 동안 삶이 힘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 인생 통틀어서 공부 외에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잘 모르겠다만, 이후 저만의 답을 계속해서 찾아나가고자 합니다.

이렇게 2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에 잠시 학계에 몸 담았다가 떠나갑니다. 이 길이 쉬운 길이 아니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것을 알기에 학계에 계속 남아계신 여러분들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석사든 박사든 중도하차하신 분들도 같은 입장으로서 응원합니다. 포기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더군요. 더군다나 대한민국 같이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회에서는. 다들 하시는 일마다 잘 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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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눈팅만 하다가 졸업직전 석사생활을 돌아보며 쓴 글이 이렇게 인기글이 될지는 몰랐네요.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보니 제가 쓴 제목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 글을 추가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널논문 작성, 연구과제 진행, 제안서 및 보고서 작성, 행정일 처리 등의 일련의 과정들이 학계에 있는 사람 모두가 겪는 과정이기에 제목도 학계를 떠난다는 느낌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들을 읽어보니, 제 글의 제목이 저보다 더 긴 기간을 연구에 매진하신 분들께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신중을 가했어야 했는데 부적절할 수 있는 제목으로 불편하셨을 모든 분들께 죄송합니다.
한편으론, 이 일을 기점으로 공공연하게 공개되는 글에는 신중에 신중을 가하여야 한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연구실에 남아 공부에 심혈을 기울이는 여러분, 연구실 밖 세상에서 치열한 삶을 사시는 여러분 모두 존경하며, 앞날이 창창하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며, 한편으론 이런 부족한 글에, 그리고 누군가는 부족해보일 수 있는 저에게 많은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일을 기억하며 많이 배워나가며 앞으로 힘차게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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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9개

2023.02.08

"교수님께서도 해결책을 잘 모르는 것을 석사 1학기에 시키셔서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건 근데 연구가 원래 다 그렇습니다. 교수님이 해결책을 알면 연구를 할 이유가 없지요. 근데 트레이닝이랑 지도가 부족한 상태에서 하려니 고생을 많이 하신듯
집요한 그레고어 멘델*

2023.02.08

??

2023.02.08

석사 이후 학계를 떠난다.. 그건 학계가 아닙니다. ㅎ 학계의 모진 맛만 보고 가신다니 아쉽군요..

대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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