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박사넷

흔한 (구)대학원생 (현)회사원의 돈에 대한 얘기

Nikos Kazantzakis

2020.09.29 8 6266

(스압주의)

최근에 인건비 얘기가 많이 올라오길래 원생때부터 돈에 대한 얘기를 좀 써봄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자면 석박통합 n년하고 올초에 졸업해서 입사 7개월차 신입사원임. 나이는 30대 초반, 미혼. 집이랑 학교/회사가 다른 지역에 있어서 학생때부터 혼자 자취하는중

-정확히 까긴 좀 그렇지만 석박사 인건비는 적은 편, 지금 월급은 다들 알고있는 그 정도라고 대충 생각하시면 됨. 등록금은 전체 과정 중에 절반정도 지원받음


-원생때 특히 초반에는 돈 신나게 까먹었음... 기숙사도 아니고 자취인 이상 내가 받던 인건비로는 월세 내고 나면 한 달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었음. 거기다 보통 석사 인건비가 박사 인건비보다 적으니까. 기숙사는 그럼 왜 안들어갔냐 할 수 있는데 떨어졌음ㅎ 학부생때 운좋게 이런저런 장학금을 계속 받게 되면서 알바로 계속 돈을 모아놨었는데, 이거 살짝씩 까먹음.

-그러다가 한 5년차쯤 또 운좋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산학 당첨이 됨. 입학 전부터 막연히 난 연구소나 학교에서 우아하게 연구하는 것보다 회사에서 구르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었음.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연구 국가과제몸빵 이런거에 한 4년차때부터 완전 질려갔었던지라(...) 어지간하면 걍 그 회사를 가고 싶었음. 그래도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몰라서 산학으로 받은 돈은 하나도 안 건드리고 그대로 적금에 부어둠. 입사 안하면 다 뱉어야 되니까.

-그렇게 산학으로 받은 돈은 고스란히 지금 사는 방의 반전세 보증금이랑 중고차값(국산 준중형)으로 들어감. 회사 생각을 하고 있으면 산학을 난 매우 추천하는 이유가, 돈 쥐뿔도 못받는 대학원생들이 30대 초중반 나이에 사회에 덜컥 나가게 될 때 그나마 든든한 시드머니가 되어줌. 요새 존리라는 아저씨가 젊은 사람들 차 사면 지옥행이라고 얘기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주 활동지가 서울 밖이라면 좀 비현실적인 얘기임. 거기에 외근 야근 특근 많은 부서 들어갈 예정이었던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 차 없는 입사동기는 지금 주말/야간 출퇴근길 택시에 돈깨나 붓고있음. (그나저나 그렇게 잦은 외근/야근/특근덕분에 워라밸은 대학원생때보다 오히려 떡락....)


-처음 월급이 통장에 찍히면 되게 신기함. 정말 많이 신기함. 갑자기 월급이 x배가 되는데 안 신기할리가. 7개월동안 받았는데 아직도 그 월급에 완전 적응은 안됐음.

-월급 받고 드는 생각들은... '내가 이걸 받아도 되나(바로 전 달만 해도 연구비에서 달랑 y만원 받았던 내가)?', '와 뭐지?' 이러다가, 한 2~3개월쯤 지나면 '와 학교에 있던 n년동안 난 대체 얼마나 궁핍하고 피폐하게 살았던거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함. 최근에 추석 상여 받고 그런 생각이 특히 많이 들었음. (참고로 명절 보너스가 대학원때 월급보다 많았음). 

-달랑 몇달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야근이 점점 남들만큼 늘어가면서 추가근무수당도 점점 쌓이고 있음. 이 추가근무수당도 처음엔 되게 신기했음. '일을 더 했다고 돈을 더 준다고????' 대학원은 그런거 없잖음. 솔직히 난 진짜 빡일하고 실적도 다른 학생들보다 괜찮은데, 맨날 학교 안오고 어딘가 가있으면서 교수님 앞에서만 위기를 헤쳐나가는 연구실 동료랑 같은 월급 받는게 억울한 적도 가끔 있었음. 회사는 일을 더 한다고 돈을 더 준다니. (물론 일 안하고 회사에서 시간만 채워도 더 주는게 함정이기는 함)

-7개월동안 월급은 그렇게 순증가세를 찍고 있음. 점점 야근과 특근 시간이 늘어난다는 얘기임. 지난달 이번달은 월 법정 근무시간에서 2시간씩 남기고 다 채웠음. 월급을 그래서 원래 계약된 것보다 10~20%정도는 더 받는듯. 근데 이제는 이 돈이 내 몸 갈아넣어 받는거구나 생각하니 기분이 점점 안좋긴 함. 실제로 조금씩 몸이 힘들어지는게 느껴지기도 하고. 뭐든 적당한 게 좋음.

-대학원에서는 잘 안하던 재테크얘기 집얘기를 회사 사람들은 많이 함. 아이 아버지/어머니들도 많으니 더 그렇지. 그러다보니 주식 안하는 사람이 나(=태생이 쫄보)말고 없는 것 같음. 다들 상대적으로 돈이 항상 없다고, 돈에 대한 아쉬움을 항상 토로함. 아이 둘인 한 분은 점심시간마다 와이프분하고 통화하면서 또 어디 청약 넣어볼지 같이 각재고 있음. 많이 받으면 그만큼 더 높게 멀리 보니까 또 부족함이 느껴지고, 가정이 생기면 실제로 필요하기도 하고. 그냥 끝이 없는 것 같음.


-결론1: 돈 많이 주는덴 이유가 다 있다. 회사 겁나게 빡셈.

-결론2: 대학원의 피폐함은 탈출했지만, 회사에서도 끝은 없는듯.

-일기는 일기장에

댓글 8

  • Vivien Thomas (탈퇴한 회원입니다)

    2020.09.29

    '일을 더 했다고 돈을 더 준다고????' 대학원은 그런거 없잖음. -- 이 부분 되게 웃프네요 ㅠㅠ ㅋㅋㅋ

    대댓글 0개

  • Nikos Kazantzakis (작성자)

    2020.09.29

    ㄴㅎㅎ 대학원생은 학생-노동자 사이 애매한 신분이기는 하지만, 원생의 노동이 금전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는건 사실인 것 같아요.

    대댓글 0개

  • Leopold Ružička

    2020.09.29

    재밌는 글 감사합니다! 박사 취득하고 기업 간 사회 초년생 입장의 글은 처음 보네요ㅎㅎ

    대댓글 0개

  • Hans Holbein the Younger

    2020.09.29

    김박사넷의 순기능ㅣ군용 좋은 글 감사합니다

    대댓글 0개

  • Henri Moissan

    2020.09.30

    재밌는글이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승승장구하시길

    대댓글 0개

  • Murray Gell-Mann

    2020.09.30

    고생끝에 낙이온다
    이런말 아니것어요?
    대학졸업하구 회사가도 그런 느낌들더마요
    지금은 좋은차도 타고 애들도 잘 커고 남 부럼지 않게잘 살고 있는 일인으로 사회 초년생 시절이 생각나네요
    ㅎㅎㅎ

    대댓글 0개

  • Nikos Kazantzakis (작성자)

    2020.09.30

    ㄴ넹 그래도 이젠 사람구실은 하고 사는 것 같아 만족합니다.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더 발전적이고 지속가능한 낙을 찾을지 슬슬 탐구를 해봐야겠죠 ㅎㅎ
    즐거운 추석 되십쇼 선배님

    대댓글 0개

  • Caspar David Friedrich

    2020.09.30

    좋은글이네요. 감사합니다.

    대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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