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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교수가 생각하는 대학원 나오기 전에 해야 할 일

다정한 존 롤스

2022.01.10 27 8192

현직 교수 현교수입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얘기 하나 나누려 합니다.

아마 다른 학과 학교들도 그렇듯 저희 학과도 지금 교수 임용 심사가 한참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 생각도 나고 아쉬웠던 것도 생각이 나서 한번 글을 써볼까 합니다.

먼저 박사를 받을 무렵, 잡마켓에 나갈 무렵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웠던 점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는 그냥 박사 받고 돈 잘 주는 직장 잡으면 되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이곳 저곳에 지원을 하고 인터뷰를 보고 오퍼를 받았습니다. 그냥 들으면 다들 그렇지 않나 하고 생각 할 수 있는데 이게 정말 큰 에너지 낭비였던게 저는 미국 대학들, 미국과 한국 회사들, 그리고 미국과 한국 연구소들까지 다 지원하고 면접 보고 했습니다. 그 때는 불안해서 그랬다고 생각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생각을 안 했던 것이란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마 많은 대학원생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직 ‘실적 쌓고 박사 논문 쓰고 학위 받아서 졸업하자’ 여기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대학원에 처음 입학 할 때 가졌던 ‘동사'로 말할 수 있는 꿈을 잊어버렸던 겁니다. 즉, 후학을 잘 길러낼 수 있는 교수 혹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연구를 하는 교수/연구원과 같은 대학원 이후의 목표가 하나의 단어, 교수 혹은 연구원이란 명사로 바뀌어 버린 것이죠.

그래서, 지금 대학원생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학위를 받고 연구실을 떠나고 나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연구가 좋다 하지만 수업은 하기 싫다’고 한다면, 학생을 위해서도 본인을 위해서도 교수보다는 연구원 혹은 미국 연구 학교의 연구 교수 자리가 맞을 것입니다. 다른 예로, 나는 정년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직장에서 정년 받은 후에는 편하게 일하고 싶다'라 한다면 미국의 주립 티칭 학교, 한국은 잘 모르겠지만 지방 국립대학 같은 학교도 좋은 선택이라 생각 됩니다. 저도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했었더라면 그때처럼 막무가내로 원서 내고 면접 보러 다니면서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만이 아니라 제 주위의 많은 친구, 동생들이 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퍼 받은 곳 중에서 가장 좋은 곳을 갔죠. 재밌는 것은 다 교수를 준비 했던 사람들이라 회사는 대부분 떨어지고 연구소나 학교로 갔습니다. 교수 임용 준비 하느라 회사 인터뷰 준비도 제대로 못 했는데 어떻게 서류랑 전화 인터뷰는 통과 해서 마지막 인터뷰까지 갔다가 떨어졌던거죠. 돌이켜 보면 회사나 본인한테 서로 시간 낭비였던 셈입니다. 반대로 어떤 친구들은 작은 학교부터 시작해서 차근 차근 더 큰 학교로 옮겨 가더군요. 이 친구들은 미국 대학의 시스템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해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어떤 교수님들은 티칭 학교에서 테뉴어를 받고 10년 정도 근무하시다가도 연구 학교로 옮기시더군요. 마음속에는 아마도 계속 연구를 하는 교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계셨겠죠. 이렇게 동사로 정의할 수 있는 꿈을 가진다면 지금 잠시 주춤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꿈을 향해 다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지금도 그리고 학위를 마칠 때에도 대학원 입학 할 당시의 한 문장으로 끝나는 초심을 잊지 않고 있다면 지금 약간의 흔들림이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그 꿈이 한 단어로 바뀌었다면 한번 다시 생각해 보세요. 그 문장은 무었이었는지.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는 마세요. 꿈을 꿀 수 있어서 행복한거라 생각합니다. 잠에서 깨면 꿈은 그만이지만 그 꿈을 꾸는 동안은 즐겁잖아요. 여러분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그 시간을 즐기기 바랍니다.

댓글 27

  • 후회하는 데이비드 흄

    2022.01.10

    이분은 정말 글 자체를 잘 쓰시는 듯.
    바빠서 긴 글 쓰시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실 텐데요.
    교수님 글을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늘 보자마자 공감 부터 누르고 읽습니다. ^^

    대댓글 1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0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화난 마르틴 하이데거

    2022.01.10

    5252 현직교수 시리즈 기다리고 있었다구!

    대댓글 3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0

      이런이런 기다리게 해버려서 미안 (ㅋ 드립 맞추기가 힘드네요 待ったせちゃってごめん을 한국어로 하려니 좀 어색하네요 ㅎ)

    • 침착한 존 필즈

      2022.01.10

      아니 교수님 일본어까지...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4

      ㄴ 전 혼모노입니다 ㅎㅎ

  • 심심한 아이작 뉴턴

    2022.01.10

    크 교수님들은 단어와 문장에서 지성이 느껴지는 군요

    대댓글 1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4

      ㅎㅎ 과찬의 말씀을..

  • 상처받은 쿠르트 괴델

    2022.01.10

    박사학위 말년에 기업행 취업시장을 기웃거린다면
    내가 할 업무와 박사학위 업무와 매우 동떨어질 것을 각오하는게 좋습니다.
    회사에서 Ph.D degree는 난제를 주어졌을때 분석하고 모델링 하는 그간 학위기간때 수련한 스킬을 원하는 고오오급 멀티툴로 생각하는게 대부분이라서요.

    물론 학위기간때 쌓은 지식과 전공이 아주 쓸모 없진 않더군요. 다 어디든 쓸대가 있습니다.

    제일 상책은 전공과 일이 결합되는거긴 한데 생각보다 희귀하죠 ^^

    대댓글 3개

    • 만만한 리처드 파인만

      2022.01.10

      이글은 심지어 댓글도 유익하노ㅋㅋㅋㅋ

    • 무서운 아르키메데스

      2022.01.11

      학교에서 하던 일과 기업에서 할 일이 align되는게 어쩌면 더 신기한 현상이라고 전 생각합니다ㅎㅎ 제가 아무 회사에서도 안하던 주제를 해서 그런가... 회사입장에선 박사면 딱히 안 챙겨줘도 알아서 적당히 잘 하겠거니 하고 그냥 멀티툴러로 뽑는건 진짜 공감합니다 ㅋㅋㅋ 그리고 대부분 자기 몫을 하구요. 물론 제가 봐도 답답한 경우도 있긴 했음...
      너무 전공에 얽매여 진로를 결정하진 말되, 가서 와 진짜 너무 노잼이다 답없다 싶지는 않을 곳으로 가면 될 것 같아요. 저도 박사 마치고 취직한 현직 회사원입니다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4

      박사 연구의 30% 정도만 매치가 되도 할만하지 않을까요? 회사 면접볼 때 내 연구를 회사가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연결해서 할 수 있겠다고 했을 때 엄청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 만만한 리처드 파인만

    2022.01.10

    하 현재 박사졸업 예정인데, 진짜 물어볼께 많은데 이렇게 글이라도 볼수있어서 다행입니다ㅠ

    대댓글 0개

  • 옹졸한 앨런 튜링

    2022.01.11

    공감하고 갑니다. 저는 포닥이고 요새 미국에서 교수 지원 중인데 박사 때 제 연구에 대한 큰 그림 혹은 제 research question이 뭔지에 대해 고민해 보지 못한 것이 돌아보면 좀 후회되는 듯 합니다. 박사과정은 특정 연구주제를 심도있게 탐구하는 과정이다 보니, 좀 더 큰 그림을 보는 것이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제 경우에는 포닥하는 과정과 임용준비하고 여러번 떨어지는 과정이 ... 아프지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제 연구자로서의 정체성, 강점, 약점, 철학 뭐 이런 것들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해 보고 평가를 받는 좋은 기회였던 듯 합니다. 말씀하신부분 들을 박사 때 생각해 봤다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대댓글 1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4

      그렇죠. 저도 아쉽습니다. 저도 학교 인터뷰 할 때 쪼금 내 자신을 뒤돌아 보게 되더군요. 그게 아직도 아쉽습니다.

  • 조급한 베르너 하이젠버그

    2022.01.11

    이 글 보고 오히려 제가 고등학생때부터 가져왔던 박사를 따려는 이유와 목표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 가치관은 틀리지 않았군요. 오는 3월에 박사 입학하는데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교수님의 값진 조언 감사드립니다.

    대댓글 1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4

      건승을 빕니다.

  • 속편한 존 필즈

    2022.01.11

    현교수님은 어느 state에 계신가요?

    대댓글 1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4

      제 마음은 남양주에 있습니다 ㅎㅎ

  • 대담한 그레이스 호퍼

    2022.01.12

    석사과정 마치고 박사과정을 준비하는 학생으로 정말 많은 고민이 되는데 혹시나 도움이 되는 답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ㅠㅠ 연구 자체에는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교수라는 직업보다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인데요. 이 경우에 굳이 박사과정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생물학 관련 전공자인데 박사과정 생각 접고 취업전선에 뛰어들겠다고 했다가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석사 졸업해서 니가 취업할 수 있을거같냐는 소리를 듣고 심각하게 고민이 됩니다..

    대댓글 1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4

      투자대비 가장 좋은 것은 즉 가성비가 제일 좋은 것은 석사 후 취업이긴 합니다. 박사 과정은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박사라는게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는 것이라... 저도 학생들에게는 취업 한 후 나중에라도 석사를 하면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하긴 합니다.

  • 졸린 우장춘

    2022.01.13

    박사 디펜스를 앞두고 있는 학생으로써 교수님 글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작정 박사 학위를 받고, 그러면 어디든 좋은 곳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곳으로 취직이 되겠지.. 했던 날들 뿐이었네요.
    심지어 박사과정 중간에 너무 힘든 일을 겪느라 이곳을 벗어나자만 되뇌이다보니 단순히 제 목표가 '졸업'이 되어버렸어요.

    주변 동료들에게는 왠지 '난 정말 연구가 재밌어'라고 말하면 눈총을 받을 것 같아서..
    '빨리 탈출해서 취직하자.' 따위의 말밖에 못했는데
    무턱대고 묻어두었던 제 진짜 진심이 뭔지 이제 슬슬 열어봐야 할 시기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시기에 이 글을 읽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대댓글 1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4

      저도 그랬고 많은 대학원생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다들 졸업만을 바라보고 생활하죠.
      진짜 진심을 잘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 징징대는 하인리히 헤르츠

    2022.01.14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반대로 어떤 친구들은 작은 학교부터 시작해서 차근 차근 더 큰 학교로 옮겨 가더군요. 이 친구들은 미국 대학의 시스템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친구들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테뉴어 받을 확률이 작은 학교에서 더 높다는 뜻인가요?

    대댓글 1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4

      많은 연구 학교들이 좋은 교수를 잡으려고 많은 서포트를 하는데 그것은 작은 학교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이 친구들은 작은 학교에 가서 연구 성과 쌓고 그걸로 더 큰 학교로 이직을 하는 거죠. 처음부터 큰 학교를 노리지 않고요.

  • 심심한 안톤 체호프

    2022.01.17

    교수님 항상 좋은 글, 유익한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중요한 부분인데 일상 보내다 보면 항상 뒷전으로 밀리는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고민을 항상 잡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ㅎㅎ

    여담으로, 매거진은 댓글을 달 수 없는 구조인게 아쉬워요 ㅠㅠ

    대댓글 1개

    • 다정한 존 롤스 (작성자)

      2022.01.17

      그러게요. 악플을 안 볼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소통이 안 된다는 아쉬움도 있죠 :)
      다음 글도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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